영은 아니지만 올드도 아니겠지 (5)
집에 갔는데 엄마가 퀭한 얼굴로 나왔다. 네가 짖지 않아서 태평이는? 물었더니 엄마가 네가 아프다고, 많이 아프다고 했다.
너는 뼈만 남은 채 축 늘어져서 나를 가만히 쳐다만 봤다. 원래대로면 크게 짖고 크게 꼬리를 흔들고 크게 반겼을 텐데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동네 병원에 매일 가서 수액을 맞고 약도 먹지만 차도는 없다고, 신장이 의심된다고 했다. 물도 밥도 먹지 않아서 약을 먹이기 전에는 주사기로 미음을 입 안에 강제로 넣어줬다. 성질 더러운 너는 역시나 그르렁거리며 반항했는데 물릴까봐 안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우리는 꼭 해야만 했다.
너만큼 말라 가는 엄마를 외출시키고 너를 혼자 지키던 날이야말로 무서운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서 하루 종일 무화과 두 알을 먹었고, 너에게는 네다섯 번 미음을 먹였던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 동네병원을 몇 군데 전전하다가 어느 병원에서 2차 병원을 가보라고 연결을 해줬다. 그리고 그곳에서 증상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엄마와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왜 아픈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여태 참았던 눈물을 선생님 앞에서 왕창 쏟았다.
너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며 컨디션을 관리한다. 주사가 15만원, 처방사료가 3만원... 백수였다가 다시 재취업했을 때 일자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우리 태평이 병원 데리고 다니고 잘 먹이려면 내가 계속 벌어야겠구나 하면서. 감사하게도 아픈 적 없는 어린 강아지들만큼은 아니지만 컨디션 관리가 잘 되면 밥도 잘 먹고 잘 뛰어다니고 잘 짖고 잘 논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내가 언제 일어나나 침대 옆에서 지켜보던 너와 눈이 마주치면 아침부터 행복하다. 퇴근길에는 얼른 돌아가서 따끈한 너를 안고 누워있을 생각을 하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리고 푹 자느라 납작해진 얼굴로 냄새를 폴폴 풍기며 나를 맞아주면 종일 쌓인 바깥의 독이 씻긴다. 왜 강아지는 자다 일어나면 조금 가벼운 걸까.
넓은 쇼파 자리를 두고도 다리 위로 굳이 올라와 눕는 너를 보는 내 표정이 아마 내가 살면서 짓는 가장 행복한 표정일 것 같다. 10년째 이런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사람들이 쩝쩝거리는 소리는 귀를 막고 싶은데 네가 사료를 오독오독 먹는 소리는 24시간 틀어두고 싶을 만큼 귀엽다. 그런데 그건 또 물을 할짝할짝 마시는 소리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태평아, 네 덕분에 약한 존재를 돌보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어. 크게 아픈 뒤로 조금만 켁켁거려도 심장이 덜컹 하는 나는 네가 멀리멀리 가면 곁에 다시는 반려동물을 두지 않고 조금 먼곳의 아이들만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네 코가 하얘지고, 눈동자도 하얘지고, (안 그래도 하얀 강아지가 왜 다 하얘지는 거니), 털이 듬성듬성 빠져도 세상에서 제일 예뻐해줄게. 힘이 닿는 만큼은 꼭 곁에 오래 있어줘. 내가 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