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영변호사 Aug 03. 2021

배려의 거리는 몇 미터일까?➁

몇 년이 흘렀다. 어떤 젊은 고객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4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다. 그는 금융기관에서 근무한다고 하였다. 땅의 경계가 문제 되어 나를 찾아왔다.


그의 인격은 훌륭했다. 비록 땅의 경계 분쟁으로 감정이 격할 수 있었는데, 상담하거나 소송 진행하는 내내 자신의 이성과 인격의 선을 잘 지켰다.


이렇듯 땅의 경계는 종종 다툼이 발생한다. 국가끼리도 국경선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뉴스를 심심찮게 본다. 중국과 인도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오지에서 국경선을 두고 충돌하여 몇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후반 휴전선 판문점에서 북한의 도끼 만행 사건을 겪었다. 독도를 두고 우리는 지금도 영유권 싸움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경계점에서의 긴장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고객에 의하면 자신의 단독 주택 앞에 오래전에 새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자신의 대지 경계를 무단으로 침범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파트 화단을 짓더니 조금 지나서 아파트 경비 초소까지도 지었다. 초기에 이의를 제기해야 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이웃과 싸우는 것이 싫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세월이 30년 이상 흘렀다. 이제 조만간 그 단독주택을 팔 상황이 되었는데, 이참에 매수인을 위해서도 대지 경계를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송을 하며 경계측량 감정을 신청하였다. 감정보고서에도 상대방 아파트 측에서 고객의 대지 경계를 침범한 것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파트가 경계를 침범한 지 너무 오래되어 아파트 측이 이미 그 땅을 시효취득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행히 20년이라는 시효취득 기간이 충족되기 이전에 고객 가족이 아파트 측을 상대로 경계측량을 요구하여 경계에 철제 펜스를 친 적이 있었다.


고객이 20년 되기 전에 상대방의 시효취득을 도중에 중단시킨 것이었다. 그 이후 아파트 측에서는 무단으로 경계펜스를 강제로 철거해 버렸다. 시효중단 문제가 이 사건의 중요 쟁점이었다.


나 같으면 경계를 무단 침범한 아파트 측에 대해 상당히 분개할 것 같았다. 그런데 고객은 의외로 차분했다. 침범 면적이 그래도 꽤 넓어 돈으로 따지면 무시할 금액이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소송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참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재판정에 나온 아파트 측의 대표자도 점잖기는 마찬가지였다. 몇몇 아파트 주민이 법정에 나와 큰 소리 내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려고 했지만 대표자가 조용히 무마했다. 우리가 보낸 준비서면을 받아 보고 아파트 측에서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몇 달 후 아파트 측은 경계를 침범한 화단과 경비 초소를 자진해서 철거하겠다는 의사를 비쳤다. 대신에 감정비용과 변호사 비용을 아파트 측에 청구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결국 소송 도중에 고객은 상대방을 잘 배려하여 원만히 합의하였고 고객은 소송을 취하하였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경계 분쟁에서 배려심 많은 고객이 결국 최종적인 승리를 한 셈이었다.


사람 사이의 배려의 거리는 몇 미터로 규정되어 있을까?


나무를 심을 때는 간격을 좀 넉넉하게 두고서 심는다. 나무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으면 나무들이 서로 햇빛을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소리 없는 다툼이 일어난다.


그러다 보면 나무가 너무 웃자라 몸이 비실비실해진다. 잔가지와 잎사귀를 많이 내 하체가 튼튼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몸통이 부실한 나무는 잘못하면 톡 하고 꺾일 수 있다.


날씨도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마주치는 경계선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하물며 수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인간 사회에서는 당연히 충돌과 분쟁이 일어나기 쉽다.


 그래도 서로가 적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선을 지키면서, 이성과 인격, 예의를 갖추고 상대방을 대할 때 사회는 무리 없이 원활하게 굴러간다.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적정 거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핏줄로 이어진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 사이에도 그렇고, 촌수 없는 배우자 사이에도 소중히 보호해 주어야 할 각자만의 심리적 여백이 있다. 적어도 그 거리만은 침범하지 않고 잘 배려해주고 지켜 주어야 아름다운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까?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각자의 여백의 거리와 같다"(불문율).


매거진의 이전글 배려의 거리는 몇 미터일까? 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