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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Aug 08. 2021

아버지가 집을 팔아버렸어요! (치매➁)

어느 날 아내와 내가 장모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양수리의 아파트를 나와 두물머리 주변을 산책했다. 모처럼 경치 좋은 야외로 나온 장모님은 어린애처럼 좋아라고 했다. 


아내가 장모님이 탄 휠체어를 저만치 앞에서 밀고 갔다. 아내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수면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에 강변의 풀잎들이 이리저리 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와 딸로서의 정상적인 감정의 교류를 상실한 아내의 애처로운 마음이 강변 바람에 가냘프게 흔들렸다.


 장모님의 상태가 여전히 심했다. 장모님의 심한 의부증에 고령의 장인도 이미 인간으로서의 한계점에 달했다. 급기야 장인의 손찌검까지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악화되면 큰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 염려되었다. 가족들이 상의하여 장모를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하지만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은 요양원에서도 포기했다.


며칠도 되지 않아 결국 다시 집으로 모시고 왔다. 장모는 스스로 취식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국가 치매센터의 도움을 받아 방문 요양사가 매일 반나절 동안 집에 와서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그나마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와 요양사가 긴밀히 협조하여 장모님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요양사의 손길이 큰 힘이 된다.


장인, 장모는 매일 아침 방문하는 요양사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요양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시간 동안 방문하여 말동무를 해 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어 준다.

그 때문에 장인, 장모의 현실감도 유지되고 정서적인 안정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치매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장모님처럼 정서적인 치매의 경우에는 치매 환자가 감정적으로 이상 반응을 보여도 가능한 따뜻하게 같이 공감하며 인격적으로 대해 주어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쉽지 않지만 가족들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정상인처럼 교감은 안 되어도 가족들의 따뜻한 말과 눈빛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장모님은 여전히 치매가 있지만 그래도 예전의 최악의 상태보다는 조금 호전되었다.


치매 환자 1명이 있으면 그를 둘러싸고 온 가족이 고통을 겪는다. 이를 돌보는 자녀들의 생활도 심한 타격을 입는다.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인 타격도 받는다. 한평생 삶을 같이 해 온 가족으로서의 기본 관계가 무너져 내린다.

 

치매 환자가 조용히 어린 시절 소녀의 모습처럼 변해가는 소위 “예쁜 치매”는 그래도 케어 하기가 좀 수월하다.


그러나 장모님 케이스처럼 감정 통제력이 상실되는 치매 환자의 경우에는 돌보는 가족 모두가 케어하는 동안 치매 환자처럼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덩달아 같이 휩쓸려가기 쉽다.


사위인 내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감정으로부터 유리되어 냉정하게 상황을 정리할 힘이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형제자매들은 이미 부모와 가족이라는 감정적인 유대관계가 오랜 세월 동안 가슴 깊이 저변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이를 단절하고 제3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치매 부모를 바라보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치매 환자의 문제가 곧 자기 문제화되었다. 장모님을 뵙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의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진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는 치매 간병기에 대한 책들이 많다. 장모님의 치매 상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를 간병하는 아들이 쓴  책을 읽어 보았다.


간병하는 아들 본인의 정신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 정말 국가 사회적인 지원이나 도움이 없다면 버텨내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치매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다. 요양사에 대한 비용은 가족이 10%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고 나머지 90% 정도는 국가에서 지원한다. 국가의 도움은  가족들이 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매우 큰 힘이 된다.


사실 치매가 완전히 강 건너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누구나 치매의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고, 후천적으로 환경이나 정서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위대한 미국”을 내걸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노년에 치매에 걸려 과거에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치매에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었던 자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두 분을 지켜보며 모진 세파를 겪어 온 고령 세대의 노후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 딸인 아내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는 동안 적당한 여유도 필요하고, 평상시에 정서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며 온유하게 사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장인, 장모의 현재의 생활 상태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지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냥 현재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두 분이 최대한 오랫동안 현재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함께 평안하게 살아가시길 희망하고 있다.


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이 사건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 고객 아버지의 정신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였다.


단순히 치매가 있다고 해서 모든 거래행위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치매 중에서도 거래를 무효화시킬 정도의 의사 무능력이나 경솔에 해당한지는 판사가 재량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는 가족들이 가정법원에 아버지에 대해 치매에 근거하여 후견인 지정 신청을 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후견인 지정 심판절차에서 아버지에 대한 의사의 전문 감정을 받고, 그 감정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증거로 사용하여, 매매 당시 아버지의 의사 무능력이나 경솔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이었다.


소송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였다. 도중에 법원에서 조정절차를 열었다. 쌍방이 합의할 여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원고인 고객 입장에서는 가정법원에서 후견인 지정 심판절차를 거쳐 법원이 지정하는 의사를 통해 전문 감정을 받아야 했다.


피고 입장에서는 만약 치매로 인한 의사 무능력이나 경솔이 인정되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 피고가 패소될 위험이 있었다. 쌍방에게 각자 불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조정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계약금은 전액 반환하되, 위약금은 그냥 형식적인 금액만 피고에게 배상하는 것으로 조정안이 나왔다. 이에 대해 쌍방이 불복하지 않아 조정결정이 그대로 확정되어 사건이 최종 종결되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날 신세가 될 뻔했던 가족들은 안심하고 집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이후로 그 아버지와 아들은 더 이상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분의 아버지가 치매 때문에 이상한 돌출 행동으로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 그는 새로 재건축한 신축 건물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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