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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영변호사 Aug 08. 2021

아버지가 집을 팔아버렸어요! (치매 ➀)

“정말 제가 살던 집에서 당장 쫓겨나게 생겼다니까요!” 

아버지와 함께 내 사무실에 찾아온 아들은 상기된 얼굴로 황당한 표정을 하며 내게 하소연했다.


“ 우리 집은 상가 주택 건물이에요. 우리 가족들이 모두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명의는 아버님으로 되어 있어요.

이곳에서 어머님, 형제자매들이 함께 살아요. 이제 건물이 좀 낡아지게 되어 재건축을 할 생각이었어요. 건물을 신축해서 세를 놓아 월세 수입도 얻고, 위층에는 가족들이 함께 거주하려고 했지요.”


그는 한숨을 쉬며 아버지를 한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눈만 뻐금 뻐금 뜬 채 아들이 하는 말을 아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듣고만 있었다.


“ 그런데요, 얼마 전에 아버님이 이 건물을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렸어요. 살고 있는 가족들과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요.”


내가 매매계약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 계약금은 이미 받았고요, 중도금과 잔금은 아직 받지 않았어요. 지금 계약을 파기하려면 위약금을 주어야 하는데, 위약금만 해도 억 원이 넘어요. 집에 돈도 없는데 큰일 났어요. 돈 때문에 해약도 못하고. 당장 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요.”


부자가 함께 내 사무실에 찾아와 상담을 한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아버지는 80대 초반이었고 아들은 4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아버지는 치매 환자라고 했다.


외출하면 집을 찾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동네 부동산 중개사가 아버지를 꼬드겨 “재건축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 아예 집을 팔아버리라”라고 말하자, 가족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버렸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사정이 참 딱했다. 고객이 매매계약을 해약하면 사건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었다. 받았던 돈을 매수인에게 다시 돌려주고, 위약금을 물어주면 된다. 소송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고객이 위약금을 지불할 돈이 없어서 해약하는 방법은 제외했다.


 하는 수없이 고객은 매수인을 피고로 삼고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보통 소송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것인데, 이 소송은 거꾸로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상대로 제기한다. 흔하지 않은 소송이다.


이 사건처럼 고객이 건물을 매도하면 고객은 매매대금을 받고 건물의 소유권 이전등기를 해 줄 의무를 진다. 소송을 해서 이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 놓으면,


고객은 이제 등기를 이전할 의무가 없어져 안심하게 된다. 상대방이 고객에게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걸어오기 전에 먼저 고객이 상대방에게 소송을 거는 것이다.


문제는 등기를 이전할 의무가 없다는 근거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였다. 당연히 아버지의 치매로 인한 판단능력 결여를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의사 무능력이나 경솔을 이유로 매매 계약이 원인 무효라고 주장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소장에 아버지의 치매 상태를 상세하게 기술했다. 당연히 치매 진단서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자 소송 중에 상대방은 아예 고객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소송 진행 중에 같은 재판부에 본래의 원고를 상대로 피고가 제기하는 소송을 “반소”라고 한다(고객이 원고가 된 본래의 소송은 “본소”라고 함).

 이제 누구의 말이 맞느냐에 따라 어느 한쪽 소송은 패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치매는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주변에 치매환자가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인구 구조상으로도 어쩔 수 없다. 하여튼 작금에는 치매라는 단어가 거의 우리의 일상이 된 듯하다.


고령의 장인, 장모님이 치매 증상을 겪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 스스로 그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두 분은 이제 내년이면 90세가 된다. 10대 후반에 결혼하여 거의 70년을 부부로 살고 있다.


장인이 젊었을 때에 사업에 실패한 후 장모님이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후 장모님이 6명의 자녀를 둔 가정을 힘겹게 이끌어 왔다. 장인이 옆에서 조금씩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이미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처남의 건강이 좋지 않아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자신의 아들을 잃은 정신적 충격의 여파가 장모님에게 거세게 몰아쳤다.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고, 시시때때로 눈물을 흘리며 감정적으로 많은 동요가 왔다.    


젊은 아들을 잃은 엄마의 비통한 심정을 그 누가 알랴? 아내와 나는 그냥 옆에서 묵묵히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치매에 관한 많은 책을 읽으며 장모님을 도와줄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망각만이 치매 증상의 전부가 아니다. 의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치매 전문가들은 뇌세포 중 전두엽의 기능이 망가지면서 치매 환자는 감정의 정상적인 통제가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장모님이 그런 사례였다. 하루 종일 감정의 기복이 심하였고, 특히 장인에 대해서는 심한 의부증이 생겼다. 망상에 가까운 의부증 때문에 장인에게 폭언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급기야는 장인과 장모님 사이에 격한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두 분의 사이가 많이 악화되었다.


 장인에게 “장모님은 치매 환자이니 장모님 말을 그냥 무시해버리세요”라고 부탁도 했다. 하지만 매일 한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장인으로서는 하루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일단 신경정신과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의사는 신경 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러면서 일단 치매로 손상된 뇌세포는 원상 복원은 불가능하고 단지 그 진행만 늦출 수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난폭성이 심해진 장모님은 그 약을 먹고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잠에서 깨어난 장모님은 약을 복용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강제로 먹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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