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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Jul 07. 2022

강아지 절대 안 키운다고 했습니다만..


"아.. 진짜.. 고만 좀 해! 다꿍 혀탋픈 또리하명 뚝인당. (자꾸 혀 짧은 소리하면 죽인다.) "

여동생이 제 말투를 흉내내며 짜증을 냅니다.


저는 반려견 미샤에게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부리곤 하는데요.

"울 미쨔, 응가했떠용? 잘했떠용. 오야오양~~. 뭐 먹고 싶포용? 따랑행."

입술을 모으고 코에 힘을 주면서 공기 20, 소리 80을 입과 코를 통해서 내보내는 거죠. 미샤에게만 사용되던 스킬이 사람 여동생과 대화할 때도 자꾸 나옵니다. 이응과 쌍디귿을 과하게 넣어서 말하는 저에게 여동생이 치를 떨며 한마디 더 합니다.

"내가 개 미샤로 보이냐?"


사실 저는 강아지를 무척 무서워했습니다. 어렸을 때 동네 개에게 쫓겼던 기억 때문이죠. 식구들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했지만 저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단단히 박았어. 근데 어느 날, 남편이 뽀시래기 강아지를 안고 왔습니다.


미샤가 저희 집에 온 첫날, 저는 다가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습니다. 강아지에 대한 저의 두려움 때문에 미샤는 울타리 안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날은 저와 미샤랑 단둘이 있었는데요. 미샤가 저에게 간절한 눈빛을 발사하는 거예요. 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용기를 내서 문을 열어줬습니다. 미샤는 너무 신난 얼굴로 저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저는 부엌 쪽으로 도망갔습니다. 싱크대 위에 얼른 올라가 앉았죠. 미샤에게 뽀록났습니다. 제가 미샤를 무서워한다는 것을요.


대치 상황이었습니다. 거실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미샤가 먼저 "멍."하고 조금은 앙칼지게 짖었습니다. 무척 겁이 지만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도 제법 큰 소리로 "왜? 뭐?"라고 소쳤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짖는 건 경계나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 꼬리 흔드는 건 기분 좋은 표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미샤는 그걸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좋다는 건가? 날 공격하겠다는 건가?' 헷갈렸습니다. 싱크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프라이팬과 냄비를 집어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미샤를 울타리로 몰아넣으려는 계획이었죠.


아일랜드 식탁을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를 빤히 쳐다보던 미샤가 돌더니, 총총거리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거였습니다. 좀 찜찜하지만 첫 서열 싸움은 저의 승리였습니다!


그랬던 저는 몇 달 후, 미샤에게 입덕했습니다. 미샤를 끌어안고 둥개둥개를 하고, 미샤에게 놀자고 질척거립니다. 저희는 잠도 같이 자는데요. 미샤가 이불 위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통통한 궁둥이를 제 배에 딱 붙이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꿀잠을 잡니다. 어느새 저는 미샤에게 스며들었죠.


강아지를 절대, 절대, 절대 안 키울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저였습니다. 절대 깨질 것 같지 않던, 그렇게 강단 있어 보이던 '절대'라는 말이 시시할 정도로 스르륵 무너졌습니다.


미샤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저는 '내가 너라면 절대 그렇게 안 해.' '난 절대 못해.' '절대 안 할 거야.' 이런 '절대 시리즈' 말들을 저에게도 남들에게도 안 합니다. 그 상황에 직접 처해보지도 않고서, 해보지도 않고서 내뱉는 '절대'라는 말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죠.


미샤는 벌써 10살이 됐습니다.

"미쨔양,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는 것 같앵. 그띠? 흐흐흐."

여동생에게 욕을 먹어도 코맹맹이 애교 소리는 고쳐지지 않네요.


9살 미샤와 뽀시래기 시절 미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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