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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덕 Jan 28. 2022

하마터면 노안라식 수술을 할 뻔했다.


20년 전 라식 수술을 했다.

안경이나 렌즈를 끼는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15년 정도를 개운하게 살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가까운 글씨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안과에서는 노안이라고 했다.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동자를 힘껏 모으면서 글을 읽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을 들고 있는 손은 앞으로 쭈욱 밀려갔다. 도저히 안 보이는 작은 글씨는 핸드폰으로 찍었다. 검지와 중지를 쫘악 벌려 확대해서 봤다.


결국... 다초점 안경을 했다. 가까이 있는 글씨도 잘 보이고 멀리 있는 것도 잘 보이니 좋다. 단점은 계속 쓰고 있으면 어지럽고 눈이 금방 피곤해진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노안라식 수술에 대해 듣게 되었다.


수술 비용이 거의 천만 원이란다. 액수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분은 보험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비용 부담없이 수술을 했단다.

'혹시 내가 들고 있는 보험도?' 갑자기 현기증이 날 만큼 마음이 급해졌다. 깨알 같은 보험 약관을 읽으려니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보험 설계사에게 바로 문의했다. 백내장 수술로 인한 다초점 렌즈를 삽입 경우에는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으하하하. 다시 눈이 좋아질 수 있다니.. 모든 것이 눈부시게 완벽해 보였다.


그날부터 안과 검사를 받는 날까지, 백내장이라는 질병이 나에게 발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내장의 위험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날개 달린 천만 원 돈뭉치만 내 주변에서 둥둥 떠 다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고객님. 고객님."

2시간 넘게 걸리는 검사 진행 중에 병원 코디와 상담을 했다. 백내장으로 인한 노안라식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는 불편함이 없어지고, 인공수정체를 넣기 때문에 영구적이며, 그 외에도 많은 장점들이 귀에 쏙쏙 박혔다. 일타강사의 설명처럼 선명하게. 그녀는 수술의 단점 역시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무시했다. 오호라! 들을수록 신박한 기술이다. 이 수술을 꼭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설명을 끝낸 그녀는 워낙 비싼 수술이기 때문에 가입시기 등 보험사에 한번 확인을 해보다. 검사 중간중간 시간이 넉넉했기에 보험 설계사에게 다시 문의했다.

'네. 객님. 실비 처리됩니다. 걱정 마시고 수술 잘 받으세요.'라는 문자를 흐뭇하게 읽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고객님, 죄송해요. 제가 다른 분거랑 착각했어요. 고객님은 실비처리가 안되세요."


"........... 네? 뭐라고요?"


검사의 마지막 단계, 의사 진료실에서 날 불렀다.

" 크게 뜨세요. 찍습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의사의 말이 저 멀리서 까무룩하게 울렸다. 제발 백내장이 아니길 랬다.

의사는 좀 전에 들은 설명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장점이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수술받은 후 다시 안경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만 또렷이 들렸다. 귓등으로 흘려보냈단점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시트콤 속 에피소드 같은 이 상황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수술비가 보험 실비로 처리된다고 했을 때는 백내장이길 간절히 바랬던 나였다. 천만 원이라는 에 눈이 멀어서 인공수정체라는 것을 탐냈다. 나의 얍삽함 때문에 소중한 수정체를 잃을 뻔했다.


상황에 따라 노안라식 수술의 장점만 보기도 했고, 단점만 보기도 했다. 내 이익에 따라 한쪽만 극대화하려는 편협된 시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노안의 장점만을 보기로 한다.


'나이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확한 안의 자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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