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에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은 대기업 - 그것도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순위에 자주 오르내리는 곳 - 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시는 분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평소 습관처럼 의례적으로 '서울대 나오시다니 대단하세요'라고 말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듣고 말았다. 자신은 서울대가 내 소속이라고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마치 빌려 입은 옷처럼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회사에서도 서울대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한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아마 나였다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닐 텐데. 그러면서 그분은 말했다. 나는 서울대를 내 뿌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내 뿌리는 학벌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2.
최근에 회사에서 자꾸 같은 부서 사람과 부딪히게 된다. 나이는 나보다 어린데 회사에는 먼저 들어온, 아무래도 좀 어정쩡한 관계이다. 그동안은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한 번 크게 싸운 이후로 더 불편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싸우지도 않았다. 내가 부서 회식 때 지나가듯 한 이야기가 아마 많이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회식 날 이후 한 달이 넘게 지나서 나에게 이야기 좀 하자고 할 때, 나는 이미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한참 동안 진행된 설교는 장황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어떻게 부서 후배들이 다 보는 앞에서 네가 나를 망신 줄 수 있느냐 하는 말이었다.
3.
사람들마다 자존감의 뿌리는 다르다. 학벌이 될 수도 있고, 나이가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겉으로 잘 보이고 물질적인 수단에 더 많이 기대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자신의 자존감을 표현하는 양 극단을 보았다. 한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을 회사 경력으로 지탱하고 있었고, 후배에게 무시당한 기억은 한 달이 넘게 그의 자존감을 자극했다. 반대로 다른 한 사람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배움의 성취를 이뤘지만 그곳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존감은 다른 곳에 기대지 않고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4.
그렇다면,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자존감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