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츠네 Aug 26. 2024

슐린 2

"쉰짜이, 잘 지내? 나 이번에 부산에 가.”

년 만에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5년 전 홍콩에서의 추억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녀가 한국에 오다니. 그것도 부산에 일주일간 묵을 예정이라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이번에는 내가 가이드가 되어 주어야 하는데. 왠지 반가움보다는 의무감이 마음을 휘감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몰랐고 그녀도 나를 몰랐다. 무형의 호감이 우리를 홍콩까지 이끌었을 뿐. 우연의 길이는 이로써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번 더 만날 줄은 몰랐다. 미묘한 감정으로 생각이 복잡하던 참에 그녀가 덧붙였다.
“그리고 내 언니와 언니의 아들이랑 함께 갈 거야.”


가족여행이란 말인가. 7살짜리 사내아이 한 명과 30대 여성 두 명을 데리고 어떤 가이드를 해주어야 할까. 마치 1차 방정식이 3차 방정식으로 진화한 것만 같은 느낌. 그럼에도 너의 스케줄을 알려주면 일정에 맞춰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녀에게 지난 호의를 갚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선명했으니까. 이틀 정도 그녀 일행과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이틀 중 첫날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마지막 날은 해운대 바다를 보여주기로 했다. 지난 5년간 그녀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흑발에 어깨 밑으로 내려왔던 긴 머리는 여전할까. 유난히 혀를 굴리며 자신감 넘쳤던 영어발음도 그대로일까. 나를 보며 장난치듯 웃던 그 미소도.


부경대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교환학생 시절의 첫 향수를 옅게나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역에 도착했다. 저녁 시간의 대학가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으나, 예전에 비해 그 밀도의 감소가 눈에 보였다. 아이오닉 택시가 내 앞의 대로변에 정차했고, 문을 열고 그녀가 나왔다. 옛날과 비슷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만 빼고. 그녀 일행에게 ”Hey, Nice to meet you” 같은 기초 영어 인사를 건넸다. 슐린의 시스터는 이름이 잉핑이라고 했다. 아들은 샤오원. 아, 그리고 잉핑은 슐린의 친언니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다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뒤 그들을 이끌고 근처에 있는 삼겹살 가게로 데려갔다. 슐린은 삼겹살을 종이컵에 담긴 물에 적셔 먹었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왜 저렇게 먹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식사를 하며 “잘 지냈어?” “부산에 다시 오니 어때?”라는 질문 외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짧은 내 영어실력 때문인지 식어버린 내 마음 때문인지. 마음은 머리로 주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식은 우정이 마음으로 느껴져서 왠지 씁쓸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커피를 포장해서 캠퍼스를 거닐었다. 매일 걷던 길이 평생을 걷지 못할 길이 되기도 한다. 매일이란 장막이 사라진 옛 길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녀 두 눈과 두 발로 아스라한 추억의 망울이 터지길 바랐다. 나는 샤오원과 적당히 놀아주며 두 여성오붓한 시간을 만들어 줬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의뭉스러웠다. 나는 친구인가, 가이드인가, 변제자인가.


그들과의 첫 일정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 두 번째 일정이 다가왔다. 해운대에서 바다를 보고 미포역 캡슐열차를 타러 가는 날이다. 그들을 내 차에 태워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자 슐린에게서 연락이 왔다. 1시간 정도 늦어질 것 같다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럴 수 있지’라고 최면을 걸었다. 이윽고 그들이 나타났다. 이제 출발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던 찰나에 잉핑이 머리를 감아야 한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머리도 안 감고 온 것인가. 그리고 미용실에 샴푸 서비스가 따로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그녀는 자기 손으로 머리를 감지 않는다고 했다. 슐린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잉핑은 차(茶) 사업 대표라고, "Rich girl". 그 말을 듣고서야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주변의 가까운 미용실을 찾아 'Rich girl'의 머리까지 샴푸 한 후에야 우리는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그들을 태우고 해운대 미포역으로 향했다. 광안대교를 지나는 길에 바다와 빌딩 위로 뭉게구름이 걸려있었다. 나는 말했다.

”Look”
핸드폰에 시선을 두고 있던 슐린과 잉핑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곧장 예쁘다고 하며 사진을 찍었다. 좋아하는 그녀들을 보니 지각의 미움이 용서가 됐다. 해운대에 도착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비탈길에서 잉핑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녀는 아들에게도 폰을 쥐어주며 열심히 자신을 찍게 했다. 잉핑은 한 아이의 엄마이지만 여전히 소녀 같은 여성이었다. 미포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소금빵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그때마다 그들이 여분의 포장분을 구매하고 내게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그들은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미포역에는 평일임에도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파가 넘쳤다. 매표소에서 제일 이른 탑승 시간이 2시간 뒤라고 했다. 저녁에 할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캡슐열차를 못 탄다고 슐린에게 말했다. 동행은 할 수 없지만 마지막까지 그들을 위하고 싶었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어린이 할인이 포함된 티켓 구입을 도왔다. 그리고 왕복에 관련된 유의사항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갈 땐 20분 일찍 미리 줄을 서 있어야 해. 그리고 종착역은 송정역이니까 중간에 내리면 안 돼. 마지막으로 21시에 종점역의 마지막 열차가 출발하고 그전에 어떤 열차든 타고 돌아와도 돼."


한국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까막귀 셋이 낯선 왕복의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새 햇빛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가야 한다. 잉핑이 내게서 몸을 돌리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숨겼다. 슐린이 말했다. 잉핑은 감성적인 친구야, 네가 친절해서 고마웠대. 짧은 만남 뒤 영원할 부재에, 나는 그녀처럼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왠지 내 마음도 먹먹해졌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라는 존재의 부재를 눈물이라는 형체로 남겨 주어서.

"남은 한국 여행 잘하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담백한 말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마음속에는 먹먹함과 안도감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감정이 공존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슐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