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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n 15. 2020

(19) 꿈의 해석

프로이트부터 딥러닝까지, 마음에 관한 과학의 여정


인간의 정신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해서 그렇지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면 상당한 난제입니다. 사람의 정신, 의식과 무의식, 마음(mind; 인지심리학에서 '마음' 은 흔히 생각하는 감성적인 의식 일부가 아닌, 인간 정신 활동을 통틀어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사용됩니다.) 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데, 어떻게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갈릴레이는 낙하 속도에 관한 물리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빗면에 쇠구슬을 굴렸습니다. 화합물에 함유된 금속 성분을 확인하려면 불꽃 색깔을 보면 됩니다. 과학은 존재하고, 이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실에 관한 연구입니다. 마음은 어떨까요? 근본적으로, 마음이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가 꿈을 연구 수단이자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마음' 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은 확실하니까요. 꿈을 꾼다고 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건을 관찰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는 꿈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는 것과 더불어 히스테리 환자들을 연구하면서 최면 요법이나 자유 연상법 등을 사용했습니다. 자유 연상법이란 환자가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 떠오르는 것을 무엇이든 그대로 말하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이 있거나, 또 남에게는 들려주고 싶지 않아 아예 입을 다물게 되는 상황 등에 마주치게 됩니다. 자유 연상법에서 환자가 말하는 내용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도 하고 발상에서 발상이 엉뚱한 곳으로 튈 때도 있습니다. 이는 의식이 강하게 작동하지 않는, 가벼운 고양이나 최면 상태와도 비슷하고, 꿈을 꾸는 상태와도 일부 비슷하지요.



자유 연상법에서도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있는데, 꿈은 더욱 그렇습니다. 꿈을 설명하거나 기록하려고 하면 어쩐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여러분도 느껴 본 적 있으시지요? 꿈은 말로 완전히 설명되는 것 같지도 않고, 사람마다 기술하는 방식도 다를 것입니다. 초기 심리학에서 사용되었던 연구 방법인 '내적 성찰법(introspection)' 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세계 최초의 심리학 실험실을 운영한 빌헬름 분트(Wilhelm Maximilian Wundt)는 피험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 관찰하여 답변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사람마다 어떤 감정이나 기분을 느끼는 정도도, 표현하는 기준도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한 설문 조사에서도 '매우 그렇다' 와 '그렇다' 를 나누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마음을 서술하는 방식' 이라는 넓은 범위에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다양한 양상을 보일까요?


심리 검사는 이런 차이를 해소하고 반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과학적, 통계적 방법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뇌에서 정신 활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고대에는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고 여겨지는, 심장에 마음이 있어서 가슴으로 생각을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른 뇌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뇌파나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활동에서부터 의식, 무의식, 생각 등 정신 활동에 관한 단서를 알 수 있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뇌 연구라고 하면 우리는 여전히 뇌파가 흘러가는 그래프나, 무슨 활동을 할 때 뇌에서 어느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뇌 사진(fMRI) 같은 것을 떠올립니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와서 꿈을 떠올려 보면, 꿈에서 우리는 날아다니기도 하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친구와 만나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나 모험을 겪기도 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도대체 꿈은 뭘까요? 꿈꿀 때의 뇌파 말고, 우리가 이런 꿈을 직접 들여다볼 수는 없는 걸까요?



재미있게도, 곧 가능할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로부터도 100여 년이 더 지난 지금, 현대판 '꿈의 해석' 기술이 발명되고 있는 중입니다.


일본 교토 대학교의 카미타니 유키야스 교수는 2012년, 사람이 꾸는 꿈을 해독하는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카미타니 교수의 연구에서 꿈의 내용은 '인물', '교통 수단', '건물', '문자' 등, 지금 꿈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20여 개 주제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꿈에서 열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보는 경우 '교통 수단', 서류를 읽고 있다면 '문자' 라벨이 활성화되는 식이지요.


이 연구는 사람이 깨어 있을 때 어떤 이미지를 마음 속으로 떠올리기만 하면 그 이미지가 무엇인지 분석해 떠올린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미지 복원(image reconstruction) 기술과 같은 원리입니다. fMRI 사진을 이용해 먼저 피험자의 뇌 활동 패턴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꿈을 꿀 때 활동 패턴으로 내용을 유추하는 방식이지요.


image reconstruction


연구 발표 당시에 꿈 해독 기술은 60% 정도 정확도의 성능을 보였는데, 이미지 분류 기술도 처음에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분하는 데서부터 지금은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이라는 설명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단계까지 다다랐으니 언젠가는 우리가 영화처럼 자신의 꿈을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꿈을 해석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AI 포럼이나 강연에 가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사생활 침해나 (기술)윤리에 관한 질문입니다. 새로운 예시를 들 것도 없이 만약 내가 꾸는 꿈이나 내가 하는 생각을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가정은 꽤 무시무시합니다.


꿈은 보인다면 어디까지 보이는 걸까요? 그렇게 되면, 감추고 싶은 생각은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감춰지는 것일까요? 혹시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요?


SF영화에서 다루는 주제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영화가 실제에 바탕하듯 기술 발달과 그에 따르는 윤리적 고민은 실제로 항상 손을 잡고 서로를 뒤쫓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맞춤형 광고 추적이나 사물 인터넷 등으로 우리의 생활 패턴이나 움직임이 기록되고, 활용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리적 자료가 그렇다면 마음에 관한 자료도 분명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항상 문제가 되는 점은, 마음을 비춰내는 해석 기계를 만들어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아직 아는 것이 적다는 것입니다. 과학은 겉으로 보이는 세상을 많이 연구해 냈지만, 우주로 수백 광년을 나가도 지구의 깊은 땅 밑으로 아직 들어가지 못했듯 마음은 아직도 과학에서 큰 미지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어디까지일까요? 밝혀지지 않은 것은 세상에서 또 얼마나 많을까요?


밝혀지지 않은 것이 무서운 이유는 이것이 전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복잡한 무늬의 천이라면, 딱 한 조각만 보고 색깔을 단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심지어 지금 이만큼이 얼마만큼인지도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을 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기술은 인간을 이롭게 하면서 동시에 해칠 수도 있는데, 이를테면 특정 금속이 음식을 달라붙게 하지 않아서 조리 기구에 널리 사용되었다가, 나중에 그 금속이 음식물과 반응해서 독성을 띠게 될 수 있다고 뒤늦게(수백만 명이 중독되고 나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기술 발달에 관한 걱정은 그래서 항상 존재합니다. 기술의 희망이 강하게 획기적인 미래를 비출수록 그 암부(暗部)를 보는 시선도 짙어집니다. 그럼에도 코끼리의 발톱을 더듬는 과학의 여정이 계속되는 이유는 한편의 우려, 한편의 희망이 균형을 이루어 나아가기 때문이겠지요. 앎의 개척을 위해서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용기를, 조심스러운 적용을 위헤서는 디스토피아를 가정하는 비관을.


이 두 축이야말로 프로이트로부터 현대에 꿈을 출력하기까지, 그리고 다른 모든 과학의 발전사를 이끌어 온 두 개의 발걸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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