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는 '하나' '둘' '셋' 을 찾아서
가연성 씨가 앞 글에서 공간과 장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 장소란 수학적으로 서술되는 공간의 특징만이 아니라, 공간에 기억과 의미가 깃들 때 생긴다.
그리고 스엠 씨는 사물과 사람 사이에서 그 사물이 어떻게 (도구적으로) 활용되어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를 이야기하셨고 말이에요.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책상의 너비를 재어 보니 1200mm입니다. '책상이 1200mm 너비이다' 라는 문장보다는 '이 책상은 컴퓨터 책상이고, 나무로 되어 있다.' 라는 문장이 어쩐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앞의 논의들에서 물체의 수학적인 사실은 대체로 물체의 의미와 반대되는 개념처럼 사용되었지요.
그런데, 그래서 이번 차례에서는 수학에 깃든 의미, 그리고 수학에서 다루는 공간에 관해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수치들은 딱딱하고, 실제 세계의 물질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학이야말로 의미를 위한 언어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수학은 사물이 가진 수많은 구체적인 특징들 중에 관심이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은 가지치기를 해서 '원하는 속성' 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입니다.
'하나', '둘', '셋' 은 이 세상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과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사과의 '수량' 에 집중해서 하나, 둘, 셋을 셀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원' 도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는 사물이 '원' 모양을 하고 있을 때 다른 모양, 이를테면 '사각형' 보다 더 잘 굴러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학은 우리 앞에 있는 구체적인 현실을 한 단계 번역하면서 시작한 학문입니다. 그리고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설탕처럼 그 사실들을 정체해, 하얗고 순수한 결정, 즉 기호들을 통해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얼핏 보기에 현대의 수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수학은 그 이론적인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응용 분야들에서 또다시 대단히 실질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마치 '한 개의 막대기' 와 '한 개의 사과'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1' 을 발견했던 아주 고대의 직관처럼, 지금 수학적 숫자들은 의미를 기술하고 단어의 뜻을 이해합니다.
이런 일들은 그야말로 추상적으로 들리는 '수학적 공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림을 보자면 이게 무슨 얘기인가? 싶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오른쪽에 있는 <국가-수도 관계> 에 [ 대한민국 ] 이라는 점을 추가한다면, 그 쌍으로 [ 서울 ] 이 어디쯤에 생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형 대수학이라는 수학 분야에서는 [ 서울 ] [ 대한민국 ] 같은 각각의 개념들을 하나의 벡터로 표현하는데, 컴퓨터로 이 [ 대한민국 ] 벡터를 열어 보면 [ 0.351, 0.178, 0.904 … ] 같은 숫자 목록들이 보입니다. 이게 뭘까요? 의미가 있기는커녕 아예 없어진 것 같은데요?
조금 낯설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면적은 100,210km² 이다.' 와 [ 대한민국 ] = [ 0.351, 0.178, 0.904 … ] 는 사실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괜찮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수학이 오래도록 발전하면서 개념을 정제해 표현하는 과정을 거치며 겉보기에 대단히 추상적으로 바뀐 것뿐이거든요. 오히려는 더 편리해져서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 이라는 문장도 [ 0.209, 0.811, 0.540 … ] 하는 숫자들에 담을 수 있고, '대한민국에 있는 큰 강으로는 한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 있다.' 도 [ 이 숫자들 ] 속에 담을 수 있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여 주는 것은 그래서 사실, '[ 대한민국 ] 에 [ 국가-수도 관계 ] 를 곱하면(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곱셈이 맞습니다.) [ 서울 ] 이 나온다' 라는 수학적인 과정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생각하던 수학도 지금 보니 실제 세계의 의미를 담고, 연산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네요.
현대의 수학자와 공학자들은 이제, 숫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과일을 셀 수 있었던 사람들처럼 실제 세계를 번역한 숫자들을 가지고 신기한 결과들을 만들어냅니다. 숫자를 모른다면 거의 비슷해 보이는 양의 사과 상자 두 개를 앞에 두고, '이것이 저것보다 많다' 고 단언하는 일이 마법처럼 느껴지겠지요? 하지만 그냥 수를 세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컴퓨터는 이 사진에 특정 브랜드의 자동차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계산했을 뿐입니다. 아주 놀라워 보이지만 이 마법은, 안을 들여다보면 결국 세계로부터 개념을 뽑아내어서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수학의 가장 처음 정의와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수학은 이 세상을 보고 시작했고 그렇게 태어난 수학의 언어는 다시 세상을 서술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관찰하면서 경험을 쌓고, 그런데 그 경험을 활용해서 다시 세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추상적인 언어도 또다시 구체적인 세계와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미와 사실도 실은 서로가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은 아닐 것입니다. 수학과 세상처럼. 공간과 장소처럼. 둘은 언제나 붙어 다니면서 서로를 해석해 주고, 그러면서 또 서로를 구성하는 가능성을 품은 짝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