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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r 27. 2020

(13) 아는 게 없는데 예술을 즐길 수 있을까?

경험, 감정, 느낌이 지식이 되는 과정

건축에 깃든 감정이라는 말을 들으니, 내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 즐기기라는 제 의견이 떠오르네요.

이번 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는 게 없는데 예술을 즐길 수 있을까?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예술은 장벽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어느 연구소에서 잠시 일할 때, 같이 근무하시는 분에게 저는 음악을 들으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근처 음악당에서 공연을 하는데 직원 할인이 50%나 되었거든요.


하지만 그 분은 '저는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건 좀…….' 이라고 하시며 난색을 표하셨습니다. 당시 프로그램은 아마 베토벤 교향곡이었던 것 같은데 베토벤에 대해서라면 저도 뭐, 딱히 아는 건 없었습니다. 저는 베토벤보다 한 100년에서 200년 전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파리의 화려한 극장, 오페라 가르니에


'아는 게 없어서' 라는 이유는 종종 두려움으로 우리를 가로막습니다. 커다란 극장은 압도가 되고, 평론가들이 내놓는 현란한, 그 분야에 관한 지식으로 가득한 평론들을 보면 뭘 좀 알아야 그놈의 예술을 멋지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와는 거리가 먼 일 같기도 합니다.


뭘 몰라서 예술을 즐길 수 없다면, 그러면 대체 뭘 알아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걸까요.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면 작곡가들의 프로필을 섭렵해야 할까요? 시대 조류가 어떻고 사상이 어쩌고 음악 기법이 뭐가 사용되었고… 하는 자세한 지식들을 섭렵해야만 음악을 감상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까요. 








태어났을 때 인간은 거의 비슷합니다. 천재 예술가도, 내 주변에 교양 좀 있다는 사람도 나도 생후 8개월에는 기어다니고 있었겠지요.


첫 시작을 말하자면 '그냥 고르는 것' 이라고 해야겠네요. 다음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그림 다섯 장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 어떻게든 하나를 고를 수는 있습니다. 색깔이 마음에 들었든 나는 사람보다 풍경이 좋아서든, 이유는 모르겠고 단지 다른 것보다 맘에 드는 것 같아서이든요.


이것은 아주 작은 취향의 단초입니다. '여럿 중에 마음에 드는 것 하나 고르기' 는 여러 번 반복해서 할 수 있지요. 그림 다섯 장이 아니라 작가 다섯 명에 대해서도 할 수 있고, 작곡가 오십 명 중에서도 고르라면 고를 수 있습니다.


이러다 만약에 그럭저럭 관심이 있는 뭔가를 집어낸다면 다른 것보다는 조금 특별하게 됩니다. 어디서 이름이 들리거나 전시가 있다고 하면 귀가 쫑긋하는 정도죠. 실제로 가지 않더라도요.


그냥 조금 좋은 것 같은 상태도 별 건 아닐 수 있습니다. 누가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도 특별히 설명하기 어렵고, '뭐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싶을 수도 있지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마치 외국어를 세 달 정도만 찔끔 배우면 어디서 들릴 때 그 나라 말인 것 같긴 한데 잘 모르겠는 상태와도 비슷하고, 아기가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모호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와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크 로스코' 의 그림을 구분해 내는 건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 그림은 죄다 이렇게 생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좋아함을 찾는 일을 오래 반복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림 여러 장을 늘어놓아도 내가 좋아하는 느낌인 그림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일 내가 특정 작가의 느낌을 좋아한다면? 그림들 속에서 '아, 이건 이 사람 화풍이야!' 하고 잡아낸다면, 어라. 갑자기 나는 아는 게 있는 놈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사실상 요즘 많이 듣는 기계 학습이니 인공 지능이니 하는 말에서 '학습' 부분이지요. 인간 학습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인간 학습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입니다.


뭔가 아는 건 아니지만, 여러 데이터를 접하고, 수용하고, 분류(여기서는 마음에 든다 / 안 든다였습니다.)하는 과정에서 뭘 알게 됩니다. 예술의 사조나 분류는 대부분 이런 '뭘 알아낸 인간' 들이, 다른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적어 놓으면서 탄생했지요.








우리가 예술을 즐기기 위해 찾아내는 것은 작곡가 이름이나 작가의 생몰년도보다도 맥락, 특징, 기호입니다.


맥락 : 모네는 자기 취향으로 꾸민 정원을 만들어 놓고 그 정원을 그렸다. 순간적인 빛과 풍경의 변화, 그때그때의 인상을 포착하고 싶어했다.


 특징 : 내가 좋아하는 풍경화 붓 터치는 꾸덕하고 거친 느낌이더라.


 기호 : 이 작가는 색깔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 분위기와 장면에 관한 인상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에, 전체 장면의 공기를 상상하듯이 색깔을 보면 좋아. 


이런 맥락, 특징, 기호들은 내 취향의 단서이기도 하고 작가가 표현하는 특정한 내용들을 보면 얻어지는 단서이기도 합니다. 이런 단서들을 쥐고 풀어 나가는 예술은 마치 작품을 매개로 양 끝에 창작자와 수용자가 있는 실 전화기 같기도 합니다.



19세기의 실 전화기 그림


현대의 소셜 네트워크를 도식화한 그래프



예술에는 활용하는 맥락, 특징, 기호가 있습니다만, 같은 작품을 두고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본다면 모두가 다른 대답을 하겠지요. 좋아하는 작가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어떤 음악은 누구에게는 한없이 슬프게, 누구에게는 잔잔하고 위로가 되게 들립니다.


그것은 어째서일까요? 함께 예술의 단서를 활용한다고 해도 각자만의 취향, 단서, 감상의 영역이 있어,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술은 퀴즈보다도 등산에 가깝다고, 일전에 제가 비유했던 일설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창작과 해독은 정답을 맞히는 퀴즈 놀이보다도 등산에 가까운 듯합니다. 만든 것을 읽음으로써 독자와 작가는 같이 산에 올라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같은 길을 가도 거기서 보고 듣고 느끼고 주목하는 것은 다르듯이, 그리고 같은 풍경을 보고도 다른 지점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듯이, 누군가는 봄의 산에서 공기의 상쾌함이나 낙엽의 바삭함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철쭉이 곧 필 시기여서 봉오리가 움텄다는 걸 기억하겠지요. 


그렇지만 두 사람이 함께 산을 올랐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하나의 산행―작품을 통해 작가와 독자는 유대와 교류를 동시에 하게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기쁨이지요. 일방적이지 않고, 이해했다고 생각해도 실은 새롭고, 서로 다르지만 같은 것을 누린 강한 감정을 인생에 새기게 됩니다. 이것은 배움이나 다른 어떤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예술의 고유한 지복입니다.'


예술의 산을 오르는 데 준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분명 도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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