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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인 Sep 22. 2020

트위터가 쏘아 올린 지속가능 마케팅 역량

어제보다 더 나은 마케터 되기: 글쓰기 편 (1)


글쓰기와 그닥 친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이어리는 매 년 챙겨 옵니다.


 여름의 햇살과 가을의 바람이 부는 두 계절이 겹치고, 이제 새콤달콤한 비빔냉면은 생각만 해도 이가 시리고 대신 따뜻한 톳솥밥이나 밤과 팥 따위의 음식이 구미가 당겨올 때가 되면 내년 다이어리의 시즌이 다가왔다는 이야기다. 그런 계절의 분위기를 잘 타는 나도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다이어리를 구매해 왔다. 그리고 아마 다이어리를 구매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 해의 다이어리를 12월까지 써본 건 수능 D-100 다이어리 말고는 없다. ‘나는 올해는 매일 자기전에 일기를 한 페이지 씩 써서 나중의 나에게 선물을 주어야지.’ 류의 신년 다짐은 짧게는 2주, 길게는 2달 해 마다 조금 다른 기간이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늘 먼지가 퀘퀘히 쌓인 음지 속의 옛날 다이어리를 청소하다 발견하면 아까운 마음에 뒷장의 백지들을 펼쳐보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 인쇄 된 빈 노트들의 자리에 내가 할 수 있는 결정은 쓰레기통에 직행시키는 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환경파괴의 주범 다운 행동이었다.
 

 그만큼 쓰는 행위 (손으로던 디지털로던) 와 친하지 못한 나는 마케터로서 일을 하면서도 최근까지 쓰는 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잘 쓸 자신이 없었고 글을 맛깔나게 잘 쓰는 같은 세대의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속으로 감탄과 질투를 해 보기만 했다. 살면서 블로그를 시작해보려는 도전은 있었지만 두 세편쯤 쓰다 보면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지 라는 의구심이 일면서 곧 심드렁 해 지고 다시 인스타그램이나 영화관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는 작가는 재능이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다른 어떤 종류의 콘텐츠 보다 글이라는 자체가 문턱은 낮아보일 수는 있지만 감상자의 자리에서 만드는 사람이 되는 일은 분명한 목적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냉철한 트위터의 세계

뒤늦게 빠지게 되다.


 그리고 올해 여름, 아직 비빔 냉면이 맛있게 느껴지는 시기에 느닷없이 트위터에 무섭게 빠져 들게 되었다. 회사 트위터 계정을 맡게 되면서 오랜만에 트위터에 들어가 몇 개의 트윗을 구경하다 10년이 넘은 이 어플계 조상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약 5년전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욕망이 오랫동안 들끓을 때처럼,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짧고 강렬한 트잉여(트위터 하는 잉여) 글들에 엄청난 질투가 일었다. 아래는 최근 이틀간 리트윗한 트위터들이다.



초밥도 이렇게 맛있는데.. 인생을 날로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 @Don_t_Kill

돈은 절대 돈의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기회도 마찬가지고 인연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항상 열심이어야 학 항상 진심이어야 하지. - @everie_days

집 가고 싶다는게 / 그 공간적 우리집이 아니라 / 정신적 우리집을 가고 싶은거야 / 집가고싶다 - @_Oongsim_

한 번 카페 가면 2kmn 정도가 적당한 거 같다. 1kmn은 너무 짧고 커피값도 안나오는 기분이고 3kmn은 지쳐서 그냥 저녁 묵고 쉬어야 함.



 이 글들은 내 마음을 사로잡아 '이 글을 수집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겠어' 라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매일 이런 양질의 트윗을 매일 보다보면 인스타그램이 트랜드 쫓기에 최적이라면, 트위터는 한 층 더 아래로 내려간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과 재미있는 카피를 찾는데 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트위터는 광고주가 가장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플랫폼으로 날 것의 진짜 바이럴이 살아 숨쉬는 개인만의 밀실인 동시에 모두가 관찰할 수 있는 광장이다. 나 혼자 쓰는 일기나 폰 안의 메모장과는 다른 소셜 미디어적 성격을 분명히 띄고 있지만 누군가의 중얼거림의 상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플랫폼이다. 그러한 연유로 인스타그램처럼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계정 팔로워 수나 콘텐트 별 좋아요 수와 비례하지 않고 매 콘텐츠가 아주 냉철하게 재단되는 곳이었다. 팔로워 수를 기준으로 콘텐츠 별 예상 아웃풋 변동 범위가 좁은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인스타그램의 게시글에 비해, 트위터는 팔로워 수 대비 몇 만 배수의 반응부터 1배수도 되지 않는 무반응까지의 광활한 범위를 갖고 있다. 보다 페어플레이가 가능하다고 느껴진 뉴비인 나에게 트위터 라는 장이 마케터들의 소망 중 하나가 긴밀하게 맞닿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케터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소망은 많다. 회사와 팀 목표 달성하기,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진성 바이럴 피드백 받기, 그리고 그 흐름을 타고 탄력받아 장기적인 그림을 그릴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담당하는 제품/서비스가 회사에서 송출하는 깔끔하고 정제된 카피 대신 좋은 고객들과 그들의 언어를 만나 콘텐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 가는 길을 만드는 경험을 구축하는 것이다. 브랜드에 열정이 있는 마케터라면 고객들로부터 누구도 부탁한 적 없지만 그들의 자발적인 상황, 성격, 영혼이 세 개가 모두 담긴 바이럴을 받아보고 싶어 한다. 신규고객유치를 위해 진행하는 단발성 프로모션은 자사몰이 잘 세팅이 되어 있는 온라인 커머스 업계를 제외하고는 고객 성향 트래킹(tracking), 리타게팅(retargeting)도 난해하며, 동시에 참여하는 고객들도 집에 가는 길에 브랜드를 기억하기 쉽지는 않다. 회사 설문조사에는 ‘매우 좋았다’를 선택했을 지라고 그들이 집에 가는 길에 진짜 그렇게 생각해줄 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다.
 

 트위터는 그런 마케터들이 원하는 진짜 목소리를 160자 이내에 원없이 만날 수 있는 금광과도 같다. 마음과 리트윗이라는 두 개의 트래킹 지표로 사람들은 그 트윗의 영향력을 판단할 수 있다. 동시에 그리고 내가 팔로우 하는 사람들이 마음, 리트윗한 글들이 수시로 타임라인에 노출 되면서 그 사람의 가치관, 성향까지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보다 트위터 내용이 우선으로 반응하는 실시간 트위터의 마음의 수는 다른 곳보다 그 순도가 높다. 진짜 반응을 얻을 수 있다보니 좋은 마케터의 테스트베드로 보였다.
 

트위터는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트리거 모음집이다

 아니, 방금 말은 거짓말이고 솔직히 말하겠다. 그냥 트위터가 재미있어서 나 혼자 낄낄대면서 하다보니까 트위터를 잘 하고 싶어져서 글쓰기 연습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마케팅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까지 발견하고 덕업일치를 느낀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젖어있을 때에는 순간적으로 카메라 어플을 키고 셔터를 눌렀다면, 이제는 트위터를 켜 짧은 글로 남기는 일이 먼저 생각이 나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데 포착하고자 하는 순간의 감정은 동일한데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남길 때와 트위터의 멘션용을 기록할 때의 신경을 쓰는 주안점이 달랐다. 전자는 정방형 혹은 스토리 비율에 어울리는 사진을 만들어 내는데 집중했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160자 안에 정수를 담아내는 속도감과 재치 있고 영혼이 담긴 문장을 만드는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핵심으로 간추려서 순수한 의도(인 것 처럼 보이는)로 고객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마케터가 매일같이 요구받는 능력 중 하나이지 않은가.


 게다가 누군가의 트윗들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트리거(trigger) 모음집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마음을 누르게 만드는 사람들의 트위터를 구경하다보니 글이 쓰고 싶어졌다. 흑역사 혹은 관종이라는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의 문장들을 매일 대면하고 반복해서 읽는 일들이 내 일상에 크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반 동안 평일에는 항상 출근시간 4시간 전 쯤 일어나 하루의 생각들과 내가 요즘 관심이 가는 책, 팟캐스트, 유튜브 등의 콘텐츠들을 단순히 모으면서 시간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시간을 채운다는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릴 수는 있는데 그냥 쉽게 말해서 좋아 보이는 글들을 노트에 필사하는 일이었다. 또한 평소에는 흘려보냈을 머릿 속에서 떠도는 생각들을 회사에서나, 출퇴근 길에 트위터나 휴대폰의 메모 앱을 활용해서 그냥 쌓아 봤고 이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꽤 많은 의지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며 메모도 잘 하는 일에 좋은 글쓰기라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한 권의 책을 만나기도 했다. 이런 작은 메모가 단순하고 확실하게 지속가능한 마케터로 성정하는 방법인 동시에 개인의 나에게도 엄청난 도움이 되는 걸 알려준 책이다. 바로 애정하는 아무튼 시리즈 중 정혜윤 작가의 <아무튼, 메모> 였다. 이 책은 표지에 이렇게 멋진 문구를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박수를 치고 가야 하는 문장이었다. 소비재를 판매하는 마케터의 입장에서 고객과 나는 멀지 않았다. 나는 퇴근 하는 순간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좇는 사람인지 궁금한 감상자이자 적극적인 브랜드 소비자였고 불매운동가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근미래에 후회할 소비를 줄이기 위해, 좋은 마케터가 되기 위한 역량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간파하고 그에 맞는 접근방법을 찾아 나서는 데 활용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돈을 쓰는 자세여야만이 소비를 줄여나가는 사회적 변화에 어울리는 마케터가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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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보다 더 나은 마케터 되기: 데이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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