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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인 Oct 20. 2022

20대 안녕, 허무맹랑하더라도 나가본다.

이민일지 시작. 그 마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네요


2022년이라는 해는 시간이 지나도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점들도 점철된 복잡한 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으로서도 가장 좋은 순간과 가장 나쁜 순간을 단숨에 겪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들도 올해는 여러번 붙여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더욱 애틋해졌습니다. 가끔씩 거울에 보면 수많은 자극에 지쳐서 살짝 오늘의 아침보다 나이가 든 얼굴이 보여 흠칫 놀라가도, 어쨌든 일을 끝마치고 깨끗하게 씻고 잠자리에 들고 또 요가를 다녀오면서 두유 한 잔 마시는 반복을 하는게 가끔은 내가 봐도 기가 차게 독하거든요. 무진장 참고 있는데, 참으면서 어쩌다 얻는 달콤함과 어쩌면 그 자체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저는 거절하지 못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안쓰러움이 한층 더해진 2022년에 한국나이 29살을 맞이한 저는 여전히 한 구석에 어두움은 가졌지만 대접해 주기로 합니다. 제가 가진 영혼이 지금 일과시간에 꼼짝없이 갇혀 있고 과거의 시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걸 이제는 그만 참기로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래서 평소와는 완전 다른 선택을 합니다. 나를 온전히 놓고 쉬어가는 고요한 곳에 요가를 통해 자주 데려갔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하지 않을 것 같은 선택을 덜컥 합니다. 직전에 만났던 사람이 헤어지고도 저를 말과 마음으로 괴롭히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시발비용을 냈는데요, 세상에서 쉼을 모르는 곳의 일번지 뉴욕으로의 비행기를 결제하게 됩니다.


재미있었어요. 출발하기 48시간 전에 ESTA 라는 비자 면제 신청을 해야한다는 걸 알고 밤새 걱정하며 뜬 눈으로 지내다가 참 미국에 누가 불러서 끌려가듯이 한국을 어렵게 놓고 갑니다. 왜 이렇게 허무맹랑하고 충동적인 선택을 해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오는게 두려운 겁니다. 상상을 잘 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잘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을 이제 눈 앞에서 내가 직접 붓칠해서 칠해야 하거나 몸으로 만들어 내야 할 때의 순간적인 엄청난 귀찮음. 왜냐면 이미 환상에서 느낀 기쁨이 크니까, 그게 실제로 왔을 때 혹여나 실망해버리면 어떡하지 싶을 때도 분명 있거든요. 그러면 기대라는 마음마저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마저 잃어버리면 인생에 모든 흥미를 잃어버릴 것 같은 무서움도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거든요.


아무튼 이 어두운 얘기들은 조금 거둬들이고, 뉴욕에 다녀오기를 참 잘했습니다. 환율이 1450원에 다다른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미친 인플레이션과 달러강세의 시국에 나답게 재지않고 다녀왔음에 또 내가 한층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뉴욕의 메트로카드를 사야 저렴하니, 어디는 꼭 다녀와야 하니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연으로 모든 것을 잃고 얻어왔던 저는 저답게 뉴욕에서 또 한층 소중한 것을 챙겼는데요, 그냥 그날부로 마음이 들었어요. 지지부진하고 행동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엄청나게 지지해주고 밀어주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네, 저는 일면식도 없는 나라에 가서 살아보겠다고 지금 혼자인 듯 공개된 곳에 글을 남깁니다. 내면의 목소리가 몇 년간 울리다보면 실현되지 않아도 가까이 다가간 경험을 하곤 합니다. 저는 근데 이제 애써서 실현까지 해 보려고요. 가닿은 그 곳에 대단한 것이 없더라도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한국이 아닌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뉴욕으로 굳어지면서 저는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수없이 실패하고 헛발질을 할 건데요. 그냥 솔직하게 적어보고 돌아가지 않고 모두 맞들어보려고 합니다. 이게 과연 한달반 속성으로 끝이 날까요? 운이 좋다면 그렇겠지만 2년이 걸릴 수도 있겠죠. 저도 미래의 제가 어떤 선택을 할 지 궁금합니다. 그래도 저는 미래의 저를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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