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오고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게 있다. 정말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그걸 해소시키는 확실한 행동이 하나 있었다는 것.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매일 하다 보면 질리기도 하지만 분명 내 우울을 지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일은, 바로 요리다.
한식, 일식, 양식, 베이킹... 종류는 상관없다. 그냥 먹을 걸 만든다는 그 분주한 움직임 자체가 가지는 활기가 좋은 거니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식사를 준비할 즈음마다 부엌을 기웃거렸고 제사라도 할라 치면 밤늦게까지 재료를 썰고 재워두는 일을 구경하곤 했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켤 힘도 없고, 싱크대 위를 보려면 까치발을 들고 낑낑거려야 했던 그 시절부터 나는 유독 요리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혼자 밥을 챙겨 먹기 시작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조금 달라진 건 요리가 우울함을 털어내는 과정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하고 싶은 메뉴를 정하고 마트에 나가 장을 보는 것부터 시작해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고 있노라면 뭔가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내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재료를 다듬고 완성된 요리로는 또 나를 먹이는 것. 맛이나 모양이 어떻든 오롯이 나를 위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은 내게 있어 최고의 힐링이었다. 특히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잃어가던 씁쓸한 학창 시절에 요리는 나만을 위한 선물을 만드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돌아보니 새삼 어떻게 잊고 있었나 싶다. 요리를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좋아했던 일을 잊고 있었다니. 급급히 살아내는 일상에서는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한순간에 너무 많은 걸 잃는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잊어버린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사소했다. 공허한 일상을 반복하다 도망치듯 외박을 나온 지 이틀 째 되던 어제, 끼니를 챙기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요리를 했던 게 그것이었다. 점심에는 요거트에 손질한 과일과 견과류를 얹어 요거트볼을 해 먹었고, 저녁에는 밀가루 없이 팬케이크를 할 수 있다는 레시피에 혹해 바나나 팬케이크를 만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실없을 만큼 간단한 요리들이다. 아몬드를 썰고 블루베리를 얹고, 계란을 저어 거품을 내고 으깬 바나나를 섞고. 그런데 그 사소한 과정들이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았다. 조명이 비치고 노랫소리가 흐르는 어슴푸레한 저녁의 풍경 사이로, 하고 싶은 대로 요리를 하는 그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행복하게 느껴졌다. 무력하게 방의 한 구석에서 핸드폰을 바라보던 며칠 전의 저녁이 되려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라는 걸 알게 된 때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실수를 하면 서러운 걸 달래기도 전에 화부터 냈고 피곤하고 지쳐도 이 정도밖에 안되냐며 힐난하곤 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살아보는 세상에서 자기 삶을 책임질 유일한 사람이 못 미더운 자기 자신이라면 누구나 처음에는 두려워서라도 스스로를 극한으로 내몰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밀어내는 상태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만다. 때에 관계없이 내가 열광하는 것이나 내가 힘들 때 극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이, 단기적으로는 별 상관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내게 꼭 필요한 그런 것들을. 이는 언젠가 내가 무너졌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줄 지지대를 하나 둘 잃어가는 것과 같다.
당장을 살아내야 하는 건 맞지만 당장 살아내는 것만을 목표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매일 행복하진 않더라도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잊어버리지는 않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