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하실주인 Feb 24. 2020

나는 회색 담장 안이 무서워 보였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확실성

당신의 망원경 시야에 물소 때가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에서부터 당신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려온다. 당신과 물소 때의 중간에 얕은 강가가 있는 것이 아마도 물을 찾아 이동하나 보다. 물소 때가 피워낸 흙먼지의 후광이 잠잠해질 때쯤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강가 근처 그늘 아래 사자 무리가 심드렁하게 배를 뒤집고 얽혀 쉬고 있다. 사냥을 한 후인지,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닌지 물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물소 울음소리에나 가끔 심드렁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 아무런 위협이 없다. 당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그러다 찰나의 순간! 당신 쪽을 돌아본다. 뚫어지게 쳐다본다. 우연일까 아니면 동물적 감각으로 당신의 위치를 파악한 것일까. 침착하게 당신은 사자와의 거리를 가늠해보면서 위협이 될 만한 요소와 방어수단을 생각한다. 머리로 안전하다는 계산을 끝냈다. 분명 그렇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분명 그러했는데, 당신의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본능적인 두려움 앞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 당신은 가족과 함께 외출을 한다. 아이들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까 싶어 동물원으로 향한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이곳저곳 뛰어다닌다. 아이들이 넘어질까 걱정하며 당신도 함께 빠른 걸음으로 다닌다. 아이들의 체력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은 지쳐버린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기가 힘에 부치나 보다. '크와아아앙' 어디선가 들리는 사자 포효 소리에 아이들은 소리 나는 곳으로 달린다. 당신은 말릴 생각이 없다. 그저 뛰지 마라고만 한다. 아이들은 사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지푸라기들을 던져 본다. 그리고 말한다.

"사자야 이리 와"


화려한 네온사인이 뒤덮은 환락가, 거리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즐비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토사물로 지저분하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노출이 심한 여자들과 그들 주위의 남자들은 온갖 쌍스런 말투로 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 행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시비라도 붙을까 봐 땅만 바라보며 걷는다. 상당히 위압적인 분위기다. 가볍게 맥주라도 한잔 하려 들어선 골목이 전혀 가볍지 않다.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들어섰나 보다. 당신의 평범함이 이 골목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아까부터 뒤통수가 따끔거린다. 자꾸 신경 쓰이는 시선이 있다. 돌아서 보니 당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을 것 같은 덩치의 남자가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 당신 허벅지만 한 팔뚝은 손목까지 문신이 드러나 있다. 볼 수록 더욱 위협적인 요소만 보인다. 그 남자가 당신에게로 다가온다. 오금이 저린다.


"정지! 0000번 줄 안 맞춥니까? 2열로 좀 맞추세요. 2열"

"대화하지 마세요! 누가 이동 중에 대화합니까"

부산스러운 수용동 복도, 왜소한 체구의 당신이 20여 명의 수용자를 연출해 접견실로 향한다. 게 중에는 당신의 시야를 가릴 정도 등치의 조직폭력배 수용자도 몇 있다.

'소곤소곤' 누군가 또 당신의 심기를 거스른다.

"정지!"

당신의 심기를 거스른 수용자에게 간다.

"0000번 내가 이동 중에 대화하지 말라고 주의 줬죠. 왜 자꾸 소란스럽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부장님, 거실에만 있으니 조금 답답했는데 나와서 걸으니 살만해서 그랬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교도소 천장을 뚫을 듯한 등치의 소유자가 왜소한 체구의 당신에게 맥을 못 추는 느낌이다. 어딘가 이상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질문을 한다.

"무섭지 않으시나요"


두려움은 관점, 상황, 위치에 따라 양면성을 띄고 있다. 바라보기조차 두려워 눈을 피하는 존재이다가도 관찰의 대상으로 덤덤하게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두려움의 감정이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한 것이라면, 덤덤함은 그 대상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직장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처음 대화해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일하기 무섭지 않으세요?”이다. 교도소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막연하게 두려움을 상상하나 보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을 해소할 방법이 거의 없다 보니 "그냥 출퇴근하는 직장이에요"라고 아무리 말해도 도통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대한민국은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온 사회가 떠들썩하다. 실제 피부로 와 닿는 거 같다. 맛집이나 명소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거리는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고, 각종 행사는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출퇴근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기침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인터넷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난무하면서 처음 접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까.


돌이켜보면 불확실성이 해소되었는데도, 혹은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두려움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소한 오해들이 보태져 이성의 뿌리를 갉기 시작하고 결국엔 중심을 무너뜨려 두려움을 부추긴다. 한 번 시작된 두려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빠른 속도로 확산돼 주위를 무너뜨린다. 종국에는 두려움이 해소될 만한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또 다른 오해들로부터 뿌리를 갉아 급작스러운 전개를 진행한다. 절정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지 못한 채 결론지어 끝내버리듯이. 그리고 다시 두려움을 스멀스멀 피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두려움의 늪에 스스로 빠져간다.














작가의 이전글 정(情)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