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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Feb 12. 2020

정(情)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다.

사람인지라...

'사람인지라', '아 사람인데', '사람이 하는 일인데'  

나는 이런 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실수에 대한 자기 합리화이자 변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이 무적의 변명은 실수를 저질러도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참아야 했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해해야만 했다. 


외부 정문은 친지들이 준비한 두부 냄새로 가득했다. 민원인 주차장은 아침 일찍부터 만차였고, 교도소로 통하는 좁은 인도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메워져 지나다니기 조차 힘들었다. 외부 정문, 교도소로 들어오고 나가는 최초이자 최후의 경계선 그 경계선 언저리에서 최후를 넘는 B를 바라봤다.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래의 남성이 다가오더니 두부로 추정되는 것과 외투를 건넸다. 두부는 보는 둥 마는 둥 친구가 건네준 외투로 갈아입기 바빠 보였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시선을 느꼈을까. 다시는 보기 싫을 것만 같은 교도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발견하고선 해맑게 인사했다.

“부장님~~~~”

“고생했다. 다신 오지 마라”

“부장님 제 연락처 아시죠? 꼭 연락 주세요”


B는 흉악범은 아니었다. 거짓말을 많이 하는 중고나라 사기꾼 정도였다. 어쨌거나 수용자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사소한 정이 들었는지 여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흉악범과는 구분 지어 주고픈 생각이다.


B는 내게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렇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들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회사를 운영했다는 둥, 잡지 표지에 나오는 잘 나가는 모델과 아는 사이라는 둥, 뭐랄까... 확인되지도 않고 확인할 수도 없는 그런  말들이었다. 그렇다고 철두철미한 성격도 아니었다. 대화에서 여기저기 허점들이 보이니 B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란 매우 힘들었다. B의 거짓말은(사실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 정도랄까. 그럴듯한 말과 과장으로 사람들을 선동했으나 사기는 치지 않았다. 자기 집에 금송아지 있다고 침을 튀며 말을 해도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나 소유하고 있을 거 같은 금송아지를 미끼로 사람들을 꾀지 않았다. (최소한 여기 내에서 만큼은 그랬다.) 그냥 어이가 없어서 이따금씩 피식할 뿐이었다.


B는 나랑 비슷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 맡은 일을 마지막까지 미루다 결국에 가서야 구색은 맞추는 것, 뛰어나진 않지만 뒤쳐지지도 않는 것, 그러나 B는 나랑 달랐다. 거짓말을 밥 먹듯, 아니 밥은 하루에 세 번 먹으니 거짓말을 물 마시듯 하는 것, 멀끔한 외모(이건 나랑 비슷)에 비해 너무 지저분한 것(나랑 다름). 말이 많고, 일은 미루고, 귀차니즘에 사로잡혀 옆사람의 근로의욕을 상실케 하는 것. 그런데 희한하게도 B 때문에 짜증 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B와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있다. B가 신문 분류 작업을 할 때였다. 20여 종에 500부가 넘는 신문을 각 사동 별로 분류해야 하기에 가끔씩 실수가 생긴다. 조선일보를 동아일보로 바꿔서 분류한다던가 한국경제를 한국일보와 바꿔서 분류하기도 했다. "B 오늘 분류 완벽하지? 실수 없지?" 신문 배달 전에 그냥 던진 말이었다. "네! 완벽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부장님" 배달 끝나기가 무섭게 모 사동에서 전화가 왔다. 헤럴드 1부가 안 왔다고 한다. 전사동을 돌면서 코리아헤럴드를 찾았다.

"살다 살다 코리아 헤럴드 틀리는 수용자는 내 처음 본다" "에이~ 사람이 가끔 실수도 할 수 있죠." P 가 끼어든다 "오호라? 가끔? 지금 가끔이라고?" 코리아 헤럴드는 붉은색이고 전자 신문은 회색이다. 실수로라도 바꿔서 분류한 건 처음 봤다. 우리는 헤럴드 B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B 때문에 더운 날 고생했는데도 어찌 된 게 다들 웃는 분위기였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제는 일 년에 한 번 모이기도 쉽지 않은 고등학교 친구들이 생각났다. 만나면 우리 나이 또래 관심사들을 주로 이야기한다. 결혼, 육아, 이직 등등... 대화의 흐름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든, 누군가 의도하지 않더라고 결국엔 학창 시절 연애사와 사건 사고 등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낄낄대며 웃고 놀리다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진다. 다음 모임 때도 마찬 가지다. 대화 주제는 비슷하고 종국에는 웃다 놀리다 헤어진다. B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웃다 놀리다 헤어질 수 있을까.

"오~~ 헤럴드 B 나가니까 신수가 훤해졌구먼" 헤럴드 B는 뭐고 어딜 나갔다는 걸까. 우리들만 아는 언어와 기억에 주위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아 왜 헤럴드 B냐면" 내가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B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만큼 불안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고생은 과거에서만 머물러야 할 정이었다.


사람은 내면에 수많은 모습들을 담고 살아가고, 상황과 역할에 따라 각각의 모습을 드러낸다. B는 분명 가해자이자 실형을 살았던 수형자이지만 담장 안에서는 제법 재미있고 정감 가는 친구였다. 담장 하나를 두고 B를 바라보는 마음이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와 손해를 안긴 사람, 누군가에게는 같이 있어 유쾌한 사람. 담장 안에서 무사히 살고자 했던 B 또 다른 내면이었을까.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연덕스럽게 연락 달라고 한다.

이런 내 모습을 피해자가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담장 안에서 정은 무섭다.


'사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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