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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실주인 May 26. 2020

직장은 다른 세상

그렇다고 내 세상이 되면 절대 안 되는 곳

회색 담장이 그림자로 뻗어 교도소를 덮어간다.

어둠이 내리 깔려 모두가 잠자리에 들 때에도 수용동 복도와 거실은 소등되지 않는다. 조도를 낮춰 수용자가 잠을 이룰 수 있을 정도만 유지할 뿐이다.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수용동 복도를 걷는다.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에도 나는 졸린 눈을 부여잡는다. 수용자 거실을 살피며 혹시나 있을지 모를 교정사고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 수백의 수용자도 제각기 사연과 생각과 신체를 가지고 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신변비관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이, 지병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 결핵 환자로 격리가 필요한 이, 오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 출소 전에 자식이 결혼하는 이, 캠프라도 하는냥 삼삼오오 모여 밤새 수다를 하는 이들까지. 누가 언제 무슨 짓을, 누구에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으니 모두가 잠든 야간에는 더욱 긴장감을 갖고 근무에 임해야 한다.


"여기는 O상 O방 수용자 간 다툼 발생했습니다. 지원 바랍니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가길 바랬건만, 사소한 말다툼이 결국에는 악다구니까지 쓰는 싸움으로 번졌다. 팀실에서부터 보안과 사무실까지 교도소 공기가 어수선해졌다.


긴급히 지원 나온 직원들과 함께 거실문을 개방하고 수용자들을 따로 떨어뜨려 팀실로 이동했다. 사건 발단은 이렇다. 수용자 A가 장이 좋지 않았는지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화장실 근처가 자리인 B수용자는 A가 들락거리는 게 무척이나 걸리적거렸고, 무엇보다 자꾸 화장실 불을 껐다 켰다 불특정 하게 반복되다 보니 잠을 좀처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수용자 거실 내 화장실은 근무자가 순찰할 수 있게 상반신 위부터는 투명 유리로 돼 있다. 화장실 불은 조도를 따로 낮출 수 없기에 불이 켜지면 신경이 쓰일 수 있다.) 참다못해 수용자 B가 "왜 이리 자주 가냐 너 때문에 잠이 안 온다"라고 하니 "미안하다. 저녁 먹은 게 잘 못됐는지 자꾸 화장실을 가게 된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결국 반복이 됐고 거실 내 다른 수용자들도 B의 편을 들다 보니 억울한 마음에 A가 악다구니를 썼나 보다.


"여기는 O하 O방 OOOO번 수용자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원 바랍니다."

창백한 얼굴빛에 숨소리가 거친 것이 상태가 급박해 보였다. 팀실, 보안과, 의료과, 운전직 공무원이 대기하는 사무실까지 교도소 공기가 어수선했다.


긴급히 지원 나온 의료과 직원이 혈압을 체크했고, 이 수용자는 간 쪽 지병으로 인해 복수가 차서 몇 차례 입원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당직에게 알렸다. 당직은 즉시 소내 대기 중인 구급차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호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흉악범이건 일반인이건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절대 유쾌하지는 않다. 국민적 악감정을 불러일으킨 흉악범을 사형시키라는 여론이 이해가 가면서도, 내가 교수형을 집행하는 그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이기에 교수형 버튼을 누를 일이 없어 정말 다행이지 싶다.


교도소를 덮을 정도로 높이 솟은 회색 담장. 여기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건 바깥세상은 알지도 못하고 그다지 관심도 없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는 수용동 복도를 돌고 있자면 세상과 단절된 고독감이 찾아오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주인공 수용자와 이를 괴롭히는 부패한 교도관을 묘사하는 미디어를 보고 있자면 가끔은 바깥세상에 서운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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