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만남의 날
가족 만남의 날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이 행사는 수용자 심신 안정과 교정교화 목적 차원에서 한 분기에 40~50명 정도 수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다.(행사 규모와 시기, 횟수는 각 소별로 상이하다) 이 날은 가족들이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 수용자와 함께 먹으며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낸다. 수용자도 수용자 가족도 고대하며 기다리는 행사지만 직원 입장에선 매우 신경 쓰이고 분주한 날이다. 수십 명의 민간인들이 외부 정문을 넘어 교도소 안으로 통하는 정문을 통과해야 한다. 매일 교도소로 출근하다 보니 나 또한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기본적으로 교도소는 보안시설이자 출입 통제구역이다. 직원 아닌 자가 정문을 넘는다는 것이 매우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행사날이 정해지고 행사 조건에 맞는 수용자가 선정되면, 수용자 가족에게 안내 사항과 유의 사항을 문자로 보낸다. 이후 유의사항과 행사 안내에 대해 다시 한번 담당자가 가족과 직접 통화도 하는데, 유의 사항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도 기본적으로 교도관과 민간인의 보안 의식 차이 때문인지 물품검사를 하다 보면 반입금지 물품이 이따금 발견된다. 집에서 흔히 쓰는 손톱깎이가 어떻게 보이는가? 사무실에서 아무렇게나 볼 수 있는 칼, 가위 등 쇠붙이는 교도소 수용동에 절대 반입불가 물품이다. 서신 담당을 하면서 우체국 직원과 있었던 일화가 있다. 수용자 한 명이 여러 통의 등기 서신을 보내면 영수증도 여러 장이 나올 수 있다. 우체국 직원은 친히 이 영수증들을 분류해 클립으로 일일이 묶어주었다. 나는 그 마음 씀씀이에 아무 말 못 하고 일일이 제거하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했다. 쇠꼬챙이 하나면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능력자에게 클립이 들어간다면...... 직원의 부주의와 수용자 가족들의 무지로 반입금지 물품이 교도소 내로 들어오게 되면 자칫 교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담배 핸드폰 술 라이타는 기본이요, 생수병에 소주를 채워 놓았는지에서부터 알코올이 미량 함유돼 있는 초콜릿이 있는지, 발효된 포도가 있는지까지 매의 눈으로 캐치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정문 근무자들도 행사 담당자도 수용자 가족을 행사장까지 안내하는 직원들도 누구 하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P 뭐 먹고 싶냐”
도서실 도우미로 출역 중인 수용자 P도 오늘 행사 참여 대상자이기에 한 번 물어봤다. 교도소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요즘은 빵, 라면 소시지, 콜라 등을 본인 영치금으로 구매할 수 있다) 아무래도 사람의 식탐은 끝이없다. 치킨이 아무리 맛있다 한들 밥처럼 먹을 수 없으며, 반대로 흰 쌀만 먹는다면 기름진 것이 간절해 진다. 사회에 있는 나조차 매일 먹고 싶은 게 생기고 기회가 됐을 때 가장 간절한 것 하나를 결정한다. 하물며 수용자는 오죽하랴. “저는 부모님께 육포랑 말린 과일류로 부탁했습니다. 여기 있다 보니 말린 게 그렇게 생각나네요” 들었던 메뉴 중 가장 참신했다. 보통은 치킨 피자에 햄버거 같은 인스턴류나 부모님이 해주신 그리운 음식, 교도소에서 먹어보기 힘든 그런 류의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먹고 싶다는데 내가 뭐라 할 문제도 아니었고 “그래 많이 먹어라”라고 하고 나도 행사장으로 향했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수용자 가족들을 안내하는 배치였다. 정문과 행사장 중간쯤 되는 위치에 서서 정문에서 오는 수용자 가족들을 행사장 방향으로 안내했고,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가족들은 수용자와 구분되는 화장실로 안내했다. 화장실까지 안내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도소라는 특수한 환경에선 수용자와 민간인의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여 교정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혹시나 길을 잘 못 들어 온몸이 한국화 그림판인 수용자를 마주친다면, 그리고 그 수용자가 "담배 있어요"라고 묻는 다면, 혹은 나에게 사기치고 걸려서 들어온 사람을 우연찮게 만나게 된다면...... 교도소는 넓고, 수용자 행동반경도 생각보다 넓다. 그러니 화장실만 가려해도 사고 방지를 위한 안내와 보호가 필요하다.
분주함과 긴장감 사이 어느덧 행사가 시작됐다. 빼곡한 점들이 내게 다가오고, 그 점들이 이내 하나씩 사람의 형상을 갖출 때, 매우 힘겹게 걸어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유독 눈에 띄었다. 걷는다기보다 거의 땅에 밀착돼 본인보다 더 큰 것 같은 아이스박스를 등에이고 오셨다. 행사장으로 가시려면 내가 서있는 위치를 통과해야 하기에 나는 가까이서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짜글짜글한 파마에 상당히 고전틱한 고무줄 바지 차림의 할머니는 아이스박스 때문인지 연세 때문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등이 굽어 있었다. 그러나 발걸음은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아들을 본다는 기대감과 본인이 준비 한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따듯하게 먹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을까.
저 아이스박스를 이고 대체 어디서부터 오셨을까
저 아이스 박스를 이고 어떻게 버스를 타셨을까
저 아이스 박스를 이고 어떻게 교도소까지 걸어오셨을까
왜 저렇게 까지
할머니는 내게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갔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머니의 아이스박스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