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관리자들
간수(看守) 보고 지키는 자, 교도관의 이전 말.
교도관(矯導官) 바로잡아 인도하는 관리, 간수의 현재 말.
"식사 좀 하고 올게요"
오늘 병원 근무 책임 교감이 식사를 하러 갔다.
외부병원에 수용자가 입원했을 경우, 보통 3인 1조 병원 근무를 한다. 답답한 회색 담장 안을 벗어나 바깥공기를 쐬니 근무자도 수용자도 상쾌한 마음일 것 같지만, 실상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무엇보다 수용자가 쇠창살이 없는 개방된 공간에서 수용복이 아닌 환자복을 입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반 환자와 구분이 되지 않아 근무자들이 신경 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최우선으로 도주방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방편으로 발목 수갑과 손목 수갑 등 보호장비들로 수용자를 구속한다. 하지만 화장실 사용이나 여타 검사를 위해선 이 보호 장비를 해지해야 한다. 건장한 20~30대 남자가 근무자들이 방심한 사이 보호장비가 해지될 때를 노려 도주를 시도한다면, 그다음은 참으로 아찔한 상황이다. 민간인과 접촉도 금지시켜야 한다. 천연덕스럽게 혹은 뻔뻔하게 또는 불쌍하게 아니면 당당하게 민간인에게 "담배 하나만 빌릴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건다면...... 주위 환경과 물건들도 가벼이 여겨선 안된다. 병원은 주삿바늘과 약품 등이 즐비해 있다. 행여나 근무자들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이런 것들을 감춘다면 곧바로 교정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농후하다. 그러니 근무자들은 평소보다 더 오감에 민감해야 한다.
수용자는 수용자 나름의 고충이 있다. 화장실조차도 본인의 의지만으로 가기 힘들다. 보호장비를 해지하려면 근무자가 교도소 당직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팔목 수갑 발목 수갑을 풀고 팔목 수갑은 다시 링거대에 고정해야 한다. 식사는 의사의 지시로 심심한 병원밥으로 대체되며, 영치금으로 음식 또한 살 수 없다. 가족 방문 또는 접촉도 원칙적으로 금지이다. 한 수용자는 오히려 "병원이 진짜 징역 같네"라고 말할 정도다.
책임 교감은 식사를 하러 갔다. 그리고 그다음 고참 주임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이라고 해도 어차피 병실 내에 있는 거라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동안만이라도 나 혼자 수용자를 계호 하는 것은 약간의 부담과 긴장감을 동반했다.
'똑똑' 누군가의 노크소리
"누구시죠? 무슨 일 때문에 오셨나요?"
평소보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에 상대방은 잠시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다.
노크의 이유가 담당의사의 회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야 나는 긴장을 풀고 문을 열어 줄 수 있었다.
간호사와 인턴 의사들 사이에 대표로 보이는 중년의 무게감 있는 의사가 내게 물었다.
"이 OO 씨 보호자 되시죠"
"아닌데요"
"..."
"???"
별다른 답을 구하는 물음이 아니라 그냥 평서체였다. 마치 "식사는 했나요?" 같은 안부인사 정도? 아니 그 정도 의미도 없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의사가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나는 제동을 걸었다. 사실 제동을 걸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정말 보호자가 없기에 했던 말이었다. '대체 왜 이 OO 수용자 보호자를 여기서 찾지?' 의사도, 대동한 인턴과 간호사들도, 그리고 보호장비에 묶여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수용자도, 너무나 해맑고 당당하게 자신이 보호자가 아니라 주장하는 신출내기 교도관에게 누군가 빨리 해명해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얇은 합판 재질의 화장실 문이 다급히 열렸다. 손도 미처 다 닦지 못하고 헐레벌떡 나온 고참 주임의 모양새가 아무래도 나와 의사 사이에 오갔던 대화를 다 들었나 보다. 다급히 벌어진 액션에 비해 나를 바라보는 고참 주임의 얼굴엔 미소, 조소, 인자함 등이 뒤섞여 있었다.
“네 이 OO환자 보호자 여기 있습니다.”
‘아...’
'보호자'
보호자의 개념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유년시절 내 보호자는 부모님이었고, 때로는 누나였다. 성인이 된 후로는 오히려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됐다. 보호자를 대동할 상황에 그저 그런 관계의 사람과 함께 하진 않으니, 보호자는 가까운 친지들이란 생각이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수용자의 보호자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난 관리자요, 감시자요,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 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일 뿐이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교도관이 된 인생의 과정이 참으로 불가사의했다. 예측하지 못한 인생의 전환점과 선택들, 생각지도 못한 만남과 그들과의 대화들이 알알이 쌓여 수만 가지의 변수들을 만들었다. 교도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잘 몰랐던 사람이 이제는 수용자를 상대하고 있다. 나에게 인생이란 신묘막측한 계획으로 부실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과정인 거 같다. 뚜렷한 신념이 아닌 외부의 변수들로 만들어진 교도관, 나는 아직 간수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간수(看守) 보고 지키는 자, 교도관의 이전 말.
교도관(矯導官) 바로잡아 인도하는 관리, 간수의 현재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