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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 Mar 20. 2023

피뢰침

주택 시세 차익의 공정한 재분배

벼락이 들어가는 단어가 싫다. 왜냐하면 시장에서 벼락부자, 벼락거지같은 단어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시장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10여년간 서울의 주택가격은 2배이상 올랐. 그 와중에 겨난 벼락거지란 말은 내 집 마련에 실패한 60%의 전월세 거주자들을 조롱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부동산과 관련하여 부동산 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바로 정보의 비대칭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은 본질적으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주택의 시세 차익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전월세 거주자들은 세들어 사는 주택에 거주하며 주택으로서의 최유효이용을 유지하고, 인근 지역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인근 지역의 경제 유지 및 발전에 기여한다. 하지만 전월세 거주자의 거주가 거주행위 그 자체로서 갖는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점은 큰 문제다. 요컨대, 전월세 거주자는 거주만으로 주택의 가격 상승에 기여하고 있고, 따라서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배분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억지 논리가? 투자자는 투자에 대한 자본 상실의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수익을 전유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위험부담의 논리에 따르면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자본 상실의 위험이 없는 전월세 거주자가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배분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가?


그렇다면 다음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깡통전세라는 말이 많이 들려온다. 이는 부동산에 전월세로 거주하며 전월세 거주자가 나중에 반드시 돌려받기로 약속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을 가진 전세금 및 그 목적이 되는 주택을 의미한다. 반드시 돌려받아야 할 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라니 모순이지 않은가?


그렇다. 전월세 거주자도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자본 상실 위험을 부담한다. 심지어 그러한 자본 상실 위험은 주택 투자자와 달리 부분적이지 않고 전체적이다. 물론 그 자본 상실의 양상이 투자자의 그것과는 다르고, 깡통 전세의 비율이 10%밖에 안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전월세 거주자들이 가지는 자본 상실 위험에 대한 부담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사회는 깡통전세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을 전월세 거주자에게 돌리고 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보증금을 맡겼다고, 주택 보증도 받지 않고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이다. 그러한 책임 전가가 합리적인가? 깡통 전세가 정말로 전월세 거주자의 잘못에 기인하는가? 사회 구조 상의 문제는 전혀 없고, 개선될 여지 또한 없는가?


지금까지 필자는 전월세 거주자가 주택의 가격 상승에 대한 시세 차익을 받아야 할 당위성을 충분히 이야기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필자가 앞으로 제안하는 정책이 실행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필자는 거주행위가 그 자체로 갖는 내재 가치 내지 거주권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합의와 동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서론을 조금 늘였다.


그럼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주택의 소유권을 가지지 않은 전월세 거주자들도 주택의 시세 차익을 분배받을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심지어 일면 간단하기까지 하다. 바로 전월세 계약을 하면서 거주 기간에 따라 주택의 시세차익을 분배받을 것을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면 된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자발적으로 합의해서 말이다.


너무 탁상 공론이라 생각하는가? 임대인이 그런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러한 새로운 계약 관행의 발생 및 보편화는 사회가 어느정도나 그러한 관행을 원하는지, 또 정책이 얼마나 체계화되어 있는지 내지는 정부의 개입이 얼마나 효율적일지에 따라 다르다.


필자가 구상하는 전반적인 정책의 골조는 다음과 같다. 우선, 주택의 시세 차익은 주식 배당금처럼 전월세 거주자가 직접 배분받는 것은 아니며, 거주한 주택의 시세 차익에 비례해 시세 차익을 배분 받는 것도 아니다. 같은 두배의 시세 차익이라 할지라도 강남의 집값이 두배가 되어 발생한 시세차익과 전라남도 여수의 집값이 두배가 되어 발생한 시세차익은 절대값이 다른데, 거주 주택의 시세 차익에 비례해 시세 차익을 배분 받는다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주택의 시세 차익은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시세 차익을 분배하겠다고 합의한 주택에서만 거두며, 그러한 시세 차익은 정부가 수취하여 하나의 기금을 조성한다. 이후, 전월세 거주자가 주택을 구입하려는 경우 해당 기금에서 전월세 거주자가 전월세로 거주했던 기간과 해당 지역의 지가 상승률 등 거주자가 주택 가격 상승에 공여한 부분을 따져 산출한 비율에 따른 주택의 시세 차익 기여분을 보조금으로 배분받는다. 이 것이 필자가 구상하는 정책의 큰 골조다.


물론 필자가 제안한 정책에 대한 많은 의문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주택의 가격 상승 배분을 조건으로 한 계약이 성립할 것인지가 그것이다. 필자는 앞서 주택의 가격 하락 위험을 전월세 거주자도 일부 간접적으로 부담한다고 전제하였다. 그 연장선상에서 소유자가 부담할 위험을 거주자가 나눠 부담한다는 조건이면 어떨까?


물론 거주자는 위험을 직접 부담하진 않는다. 다만 간접적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예컨대, 앞서 이야기한 기금에서 소유자에게 주택 가치 하락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면, 주택 소유자, 즉 임대인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다.


한편, 시장원리의 측면에서 전월세 거주자의 입장이라면 같은 월세로 나온 매물 중 주택의 가격 상승 배분을 조건으로 한 계약이 성립되는 주택에서 거주하고 싶을 것이 자명하다. 즉, 그 계약의 수요가 발생하고, 그 수요는 정책이 성숙해 감에 따라 커질 것이다. 그리고 수요에 공급이 따라오는 그런 상황이 필자가 그리는 이상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필자가 이런 현상을 기대하는 가장 큰 근거는 거주자의 거주행위가 갖는 내재적 가치가 주택 투기꾼이 갖는 협상력보다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해당 정책으로 기대하는 것은, 첫째,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이 갖는 버블이 붕괴될 때 그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며, 둘째, 거주가 갖는 가치와 거주권의 보장이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인정받는 것이며, 셋째, 내 집 마련이 꿈으로 남아버린 청년 세대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정책이, 적어도 이 정책에 대한 필자의 제안이 벼락거지라는 말의 피뢰침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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