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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Nov 30. 2019

떨어지는 낙엽에도 사랑은 꽃피는 걸요

지친 퇴근길을 나서는 어느 하루

붉게, 또 노랗게. 학교를 채색하던 계절이 지나간다. 교실 안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몇 장 남지 않은 교과서와 씨름할 때, 교정 곳곳에선 화려했던 나무들이 조용히 몸을 털며 그 빛을 땅에 떨군다.


5년마다 돌아오는 학교 정기 감사 마지막 날. 며칠간 질의에 시달린 교무실 분위기는 무겁다. 피곤함과 불쾌감을 저마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평소보다 긴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핸드폰이 울린다. 교사 단체 카톡방이다.


누굴까? 이 마음은.


“도서관 앞에 낙엽으로 누가 하트를 만들어놨네요.”


서둘러 짐을 정리해 교무실을 나섰다. 퇴근길에 도서관을 지나며 발걸음을 멈춘다. 나보다 앞서 나간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다들 멈춰서 있다.


“너무 예뻐요.”


저마다 사진으로 순간을 저장한다.


“저는 종합감사에 몇 번 왔다 갔다 했더니 영...”


아직 속상함이 풀리지 않은 선생님은 무뚝뚝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한다.


‘아이들일까? 아니면 주무관 님 이실까?’


궁금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조그만 자랑도 하지 않은 겸손함이 예쁘다. 일상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그 따뜻한 마음에 질투도 조금 났다. 사실 많이.


내가 무심하게 스쳐가던 공간에서 누군가는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을 나누어준다. 평범함은 작은 변화만으로 특별해지고, 그 특별함에서 내 평범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 속에 있는 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있는 곳은 아름다운 곳이구나.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있고,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구나.’


나도 슬몃 웃고, 멈춘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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