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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Nov 28. 2019

신념을 버리면 채용해주시나요?

면접장에서 고민하다

2009년 11월. 바람이 차가웠다. 졸업을 앞둔 취준생에게 11월은 벌써 겨울이었다. 그 겨울은 언제 끝날지 몰랐다.


돌이켜보면 참 건방졌다. 나 정도면 서울 시내 기간제 교사 자리 하나쯤은 쉽게 구할 거라 생각했다. 자리가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교사는 내가 잠깐 거쳐 가는 곳이니까. 난 공부를 더 해서 학자가 되거나, 평생 글을 쓰며 사는 직업을 가질 몸이니까. 그래서 여유로웠다. 구직 사이트를 가볍게 돌아보고 집에서 가까운 몇 개 학교에만 기간제 교사 지원 원서를 넣었다. 그중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였다.


면접 당일. 가벼운 마음으로 터덜터덜 걸어서 학교로 갔다. 15분간 엉터리 같은 수업 시연을 하고 면접에 임했다.


“왜 교사가 되려고 하지요?”


교장 선생님이 물었다. 고2 때 담임 선생님의 질문이 생각났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나를 꽤 아껴주셨다. 수업 시간에 깨어있는 서너 명의 학생 중 하나라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복도에서 나를 마주친 선생님이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B야. 진로는 정했니?”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그래? B야. 교사가 될 생각은 없니?”


....


왜 그렇게 물으셨을까? 보시기에 내가 교사에 적합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셔서 였을까? 아니면, 가정환경조사서를 보시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셔서 였을까? 다시 뵙게 되면 한 번 여쭈어 보고 싶다. 물론 기억하진 못 하시겠지만.


어쨌든.


시건방지게 대답했다. 대학생 때의 내 치기는 고등학생 때부터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 저는 교사가 정말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잘할 자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매일 아이들과 반복되는 삶을 살면서 쉬운 내용을 가르치는 건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지금도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B 선생님. 선생님은 왜 교사가 되려고 하지요?”


답을 해야 했다.


“저는 공부하는 것이 좋고,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전해주는 일을 좋아합니다. 교사는 평생을 공부하는 직업이면서, 또 그를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여러 후속 질문들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내내 희망 진로가 ‘기자’라고 되어 있는데 말이 안 맞는 건 아니냐'

‘내신 성적이 괜찮은데 더 좋은 대학이 아니라 왜 이 대학에 진학했는지?’


라든가 하는 류였다. 움찔하기는 했다. 그래도 대답할 거리는 있었다.


“기자와 교사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정리해서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수를 하면서 교직에 대한 흥미가 많이 생겨서 사범대에 진학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질문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B선생님. 그럼, 전교조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


난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다. 과 학생회장(학생‘회장’이 아니라 ‘학생회’장이다.)을 하기는 했지만 우리 학생회는 심부름센터에 가까웠다. 잠긴 사물함을 따주고,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게 전부인 학생회였다. 하지만 난 전교조를 싫어하지 않는다. 내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잠시 고민을 했고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 전교조가 하는 모든 행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과도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교조는 그 나름의 역할을 우리 사회에서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위한 그 진정성은 존중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진심을 말했다. 면접장에 계신 선생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음날, 문자가 왔다. 불합격이었다.


‘미션스쿨인 학교인데 난 기독교가 아니니까.’

‘전교조를 반대하지 않았으니까.’

‘다른 학교에 가면 되지!’


정신승리로 내 자존감을 보호했다. 당시에는 이 학교가 내게 면접 기회를 준 처음이자 마지막 학교인 것을 몰랐다.


2010년 2월 어느 날. 사각모 쓴 사진 몇 장을 쥐어주고 대학교는 사회로 날 차 버렸다. 졸업식이 끝나고 집에 와 누었을 때까지의 그 짧은 몇 시간 동안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빠르게 추락했다.


그때 낯선 번호가 전화기를 울렸다.


“여보세요?”

“여기는 OO고등학교입니다. 예전에 기간제 교사 원서 내셨었지요?”

“네. 맞습니다.”

“혹시 아직 학교 구하고 계신가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아직 자리가 안 정해졌습니다.”

“아. B 선생님. 3월부터 출근하실 수 있으시죠? 그럼 서류 준비해서 지금 행정실로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바로 준비해서 가겠습니다.”


내게 직장이 생겼다...


알고 보니 사연은 이랬다. 11월에 일찍 기간제 교사를 뽑아놓으니 일찍 뽑힌 기간제 선생님은 여러 다른 학교 정교사 시험을 보신 것이다. 정교사 발표가 2월에 나고 그 선생님이 다른 학교 정교사 부임을 위해 기간제 자리를 포기하셨다. 다른 능력 있는 선생님들은 12월부터 2월 초까지 저마다 기간제 자리를 구했으니, 당장 3월 개학을 앞두고는 채용할만한 선생님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능력이 없었기에 내게 찾아온 운이었던 것이다.


가끔 이때를 돌아본다. 혹시 다시 면접장으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전교조를 부인할까? 고민한다. 결론을 내린다. 같은 대답을 했을 것 같다. 아직 내겐 건방짐이 남아있고, 나를 나로서 지키고 싶다.


어쨌든.


이렇게 내 1년간의 기간제 교사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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