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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Nov 09. 2019

대학생 B, 실업자가 되다

나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사진 몇 장과 함께 대학생활은 마무리됐다. 졸업이다. 졸업식에 후배들이 많이 와줬다. 꽃다발과 선물도 챙겨줬다. 학교를 헛 다니지는 않았구나. 뿌듯했다.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근사한 식사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대학 4년을 보냈다. 이제 꿈을 실현할 때다.


 방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니 내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아... 진짜네.. 이제 진짜 백수구나..’


갑자기 두려워졌다.


      예전 졸업한 선배들이 말했다. 졸업이 기쁘지 않다고. 사회에 나가는 게 아니라 학교가 발로 뻥 차낸 것 같다고 했다. 자신감 없어 보이는 그 말이 영 별로였는데, 학교는 나 역시 매정하게 세상 속으로 뻥 차냈다.

내 독수리 슛을 받아라, 세상아!

     졸업을 앞둔 11월부터 기간제 교사 원서를 썼다. 자신만만했다. 소위 SKY는 아니어도 서울 4년제 사범대를 나왔다. 토익 점수도 갖추어 놨고 인물도 이만하면 되었다. (채용 담당자는 다른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해외 경험이 없는 것과 낮은 학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나 하나 써줄 학교가 없을까 싶었다. 나보다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선배들도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데.


시간이 흘렀다.


12월. 1월. 2월.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아.. 통근할 수 없는 먼 곳이라도 쓸 걸 그랬네..’


     건방진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어디든 나를 써줄 단 하나의 학교만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학교가 나를 간절히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사정이 비슷한 다른 동기들은 임용고사 재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가정 상황상 돈을 벌어야 했다. 난 잘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통계에 비자발적 실업자 수를 한 명 늘리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 中>


우습게도 좋아하는 백석 시가 떠올랐다.


‘그 사람도 나처럼 누워서 이런 생각을 했을라나?’

그도 영어 교사였지...

한껏 센티해져 ‘다 낡은 샤쯔’를 입은 채로 망상을 이어갔다.

‘사범대는 왜 들어온 것이냐.’
‘과방에 앉아 밤새 기타 치고 노래할 때 이리될 줄 알았다
‘4학년 때까지 학생회를 하는 놈이 어딨다고
덜컥 과대표 형의 꼬임에 넘어가
과대표가 된 것이냐’
'취업이란 무엇인가'


     혼자 있으면 생각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동기들 불러서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였다.


에효. 실없는 놈.


그때 낯선 번호가 전화기를 울렸다.


“여보세요?”
“여기는 OO고등학교입니다. 예전에 기간제 교사 원서 내셨었지요?”
“네. 맞습니다.”
“혹시 아직 학교 구하고 계신가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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