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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May 10. 2020

나도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교사 임용의 추억

"형. 저 작년에 임고(임용고사) 2차에서 0.5점 차이로 떨어졌어요..."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와 카톡을 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 똑똑하고 성실해서 어디서든 자기 몫 이상은 하는 후배다.


"올 해는 교육행정직도 시험 보고, 또 임고 도전하려구요."


답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내 격려가 그 친구를 아프게 할 수 있으니까. 난 대학을 졸업하고 경력 단절 없이 교사가 되었다. 그런 내가 안갯속에서 분투하고 있는 후배에게 감히 말을 보탤 수 있을까? 무례한 일일 뿐이다. 짧은 한 달 반의 겨울을 견디는 것도 내게는 벅찼다.


2010년 12월. 유난히 추웠던 그 겨울을 기억한다. 아직은 앳된 얼굴이 채 가시지 않은 남녀가 차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 짤막한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이는 밝게, 또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B선생님. 들어오세요."


내 차례다.


'나도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으니까.'


긴장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교장실로 들어갔다. 기간제 교사 면접 뒤로는 처음 교장 선생님과 독대하는 자리. 짧은 환담이 오갔다. 올 한 해 우리 학교생활은 어떠셨느냐, 불편한 것은 없었냐는 등 따뜻한 말로 교장 선생님은 말을 시작했다.


"B선생님..."


짧은 침묵이었다. 의 얼굴에서 묘한 난감함을 읽을 수 있었다.


"B선생님은 내년 우리 학교 계획에 없습니다."


"네..."


수고하셨다라든가, B선생님이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라든가, B선생님은 젊고 유능하니까 어느 학교든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따라왔지만 내겐 단 한 문장만이 계속 메아리쳤다.


"B선생님은 내년 우리 학교 계획에 없습니다."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 평소 잘 챙겨주시던 선생님들은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넸다. 고마웠다. 다만, 와 닿지 않았다. 그저 남은 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2010년 12월 2일. 평균 기온 9.5도. 예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라며 일기예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며칠 힘이 들었다. 첫 담임을 맡아 설레 하는 동료 기간제 선생님을 마주할 때,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할 때, 그리고 내 자리에서 책상을 조금씩 정리할 때. 마음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했다. 그 주관적 사랑이 객관적 평가와 어긋남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받아들였다. 부족함이 많았다. 그때 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편한 친구였다. 교실을 장악하지 못했고, 수업은 자신감이 부족했다. 재계약은 과한 욕심이었다.


며칠 후 퇴근길. 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B야. 학교는 어쩐 일이야?"


우연히 마주친 선배가 말을 건다. 휴학을 반복해서 졸업이 꽤 늦은 선배. 졸업을 앞두고 그 역시 여러 학교에 원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


"아... 형. 저 정교사 원서 써보려구요. A 중학교. 성적증명서 떼러 왔어요."


"에이, B야. 그런데 거기 강남에 있는 학교 아니야? 그런데는 스카이 아니면 안 뽑아줘. 난 원서비 아까워서 그쪽은 아예 원서도 안내."


"네.."


짧게 인사하고 나왔다. 그 형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 스카이 출신. 3점을 조금 넘는 학점. 애매한 토익점수.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기간제도 연장하지 못 한 나인데...


자기소개서를 쓰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원서를 내야 할까?'
'다른 기간제 교사 모집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또 한 번, 불합격이라는 생채기를 그 위에 덧대고 싶지 않았다. 좌절보다는 포기가 쉬운 법이다. 값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쉬운 길을 택하고 싶었다.


접수 마지막 날, 결국 원서를 들고 길을 나섰다. 도전조차 망설이는 20대는 내가 꿈꾸던 청춘이 아니었으니까.


학교는 마천루들 사이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교문 앞을 서성이던 내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원서 넣으러 오셨어요?"


길을 못 찾고 있다고 생각하셨었던 것 같다. 전 날 수북이 내린 눈을 쓸던 직원 한 분이 건물 한쪽을 가리켰다. 인자한 웃음이었다. 감사했다.


그 후 한 달. 난 A학교 교사가 되었다. 과장된 서사로 내 입사를 꾸미고 싶지는 않다. 그저,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간신히 통과했다고 말하고 싶다. 2차 합격자 발표 때는 떨어진 줄 알고 있다가 늦은 합격 전화를 받고 기뻐했었다. 교장 선생님이 학생회 경력을 물어 당황했었던 일도 떠오른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를 뽑아야 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도 꽤 있었다고 했다. 어느 쪽이든 한쪽은 그때 주장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2011년 2월. 봄방학을 앞두고 내 기간제 생활은 마무리됐다. 해피앤딩이었다. 그때 재계약을 못 했기에 정교사 시험을 볼 수 있었고, 또래에 비해 빠른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지나서 보는 과거는 언제나 쉽다.


가끔 잊는다. 마치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던 듯 떠벌리는 나를 발견한다. 사실은 아닌데...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은 내 작은 노력보다 더 많은 운이 작용했을 뿐이다.


긴 고민끝에 뻔한 답장을 후배에게 적었다.


"J야. 시험이라는 게 노력은 평가해주지 않으니까. 얼마나 힘들었겠어.
다리를 건너온 사람으로서 쉽게 하는 말이라 조심스럽지만, J도 조금 돌아갈 뿐일 거야. 난 곧 네 자리로 갈거라 믿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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