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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May 24. 2020

달콤했던 촌지의 추억

이제는 기억도 흐릿한 초등학교 시절. 아직 남아있는 편린 하나를 꺼내본다.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말썽꾸러기였다.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떠들고 장난치는 건 예사고, 선생님 수업을 뒤로하고 몰래 동화책을 읽다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아무리 장미가 화려해도 장미가 쓰레기통 속에 있으면 쓰레기일 뿐이야.”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2학년생에게 한 훈계로는 심하다 싶기도 하지만, 당시엔 죄송한 마음에 펑펑 울었더랬다.


그래도 어디 아이가 쉽게 바뀌겠는가. 학년이 바뀌어도 난 여전히 장난치고 수업을 방해하는 참 별로인 어린이였다. 매번 준비물을 안 챙겨 오는 걸로 가장 자주 혼나기는 했지만, 이는 준비물 살 돈도 쥐어줄 수 없었던 가난 탓이었다고 합리화해본다. 물론 선생님은 그를 알 수 없었을 테다. 아니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학교 가는 게 괴로워졌다. 당시 학급 부반장도 하면서 나름 잘해보려 했던 것 같은데, 담임 선생님께 매일같이 혼났다. 혼날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게다. 하지만 싸움을 한 것도, 유달리 다른 해와 다르게 행동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은 내게 참 차가웠다.

“요즘 학교생활 어떠니? 담임 선생님 말 잘 듣고 있지?”


당시 엄마는 공장에서 미싱을 했다. ‘‘오바로크’를 친다’고 했었던가? 일터에서 느지막이 오는 엄마가 으레 일상적인 물음을 내게 던졌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속상할까 싶어 늘 잘 지낸다고 했었는데...


그때는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컸나 보다. 엄마한테 안겨 펑펑 울었다.


“B야. 니가 잘 못하니까 선생님께서 혼내시는 거지.
잘했으면 선생님이 괜히 혼내실 일이 있겠니?”


달래는 대신 엄마는 나를 혼냈다.


맞다.

내 잘못이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며칠 뒤 주말.


엄마의 절친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즐겁게 나누는 담소가 거실 너머로 들려왔다. 일상을 이야기하고, 직장 동료 흉을 보기도 하고. 여느 때 같은 평범한 대화였다.


“그런데 S야. B가 말이야...”


엄마가 말을 꺼냈다. 내 이야기다.


“요즘 애가 학교에서 말썽을 심하게 부리는지 담임 선생님에게 매일 혼이 난데.”


내 또래의 딸을 키우는 엄마 친구 S. 찬찬히 듣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에이. 별거 아니네. 그런 사람 많아.”

비책 인양 아주머니는 몇 가지를 엄마에게 알려줬고 엄마는 조용히 들었다. 그때 엄마 표정이 어땠을지가 궁금하다.


어쨌든.


아주머니가 다녀가고 나서 내 학교생활은 편해졌다. 갑자기 모범생이 된 것 같지는 않은데, 난 다시 웃음을 찾았다. 여전히 수업 태도는 엉망이었지만 담임 선생님은 온화한 얼굴로 나를 달랬다. 참 용했다. 그런 나를 보는 엄마도 흐뭇해했다. 나를 보며 흐뭇해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기뻤다. 모든 게 좋았다. 그 비책 덕분에.


엄마가 아주머니께 전화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S야. 니 말이 맞나 보더라. 그 뒤로는 B 담임이 B한테 잘해준데.
난 이런 거 처음이라 혹시 뭐라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책 사이에 봉투 든 거 확인하고도 웃으면서 받더라?
뭐 그러냐 학교가.”


이젠 2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

내가 지금 교사이기 때문일까? 스승의 날 즈음이 되면 이때의 기억이 늘 생생해진다.


“아이고 선생님. 정말 커피 한잔도 못 받으시는 거예요?
요즘은 다 안 된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들고 왔어요. 너무 죄송해서 어쩌죠?”


전혀 미안하지 않는 얼굴로 웃으며 말하는 학부모. 그런 학부모를 보며 생각한다. 이 엄마도 20년 전 우리 엄마처럼. 친구에게 딸의 학교생활을 상담하고 교문에 들어온 건 아닐까?


그래서 다행이다. 아이 엄마가 주는 커피를 받으면, 난 거울에서 20여년 전 내 담임 선생님을 발견했을지 모르니까.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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