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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Jan 09. 2021

30대 후반의 남자, 사랑고백을 받다.



“좋아해.”


이 짧은 한마디를 먼저 들은 기억이 내겐 없다. 짝사랑 전문가. 사랑 고백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근사한 외모의 친구는 발렌타인데이면 정성스러운 수제 초콜릿과 사랑 고백을 함께 받고는 했다. 난 옆에서 건강하게 당 수치를 유지한 게 다행이었을까?


물론 거절만 당했던 건 아니다. 사랑 고백 후에는 좋은 친구가 생기고는 했지만,


“우리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


내 고백을 받아준 착한 아이와 연인이 되기도 했다. (다들 잘 살고 있니?)


그런 내가 늦은 나이에 사랑 고백을 받았다. 30대 후반의 나이가 다 되어서.


뜻밖이었다. 내가 잘해준 게 없었으니까.


우리가 알게 된 지는 1년쯤 됐다. 상대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누가 봐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연스레 친해질 거라 기대했는데, 코로나를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했다. 가끔 만날 때도 나는 참 별로였다. 일방적으로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는 날이 많았다. 상대의 작은 흠이 보일 때면 투덜대며 트집을 잡기도 일쑤였다. 그런 내가 좋다니.. 세상엔 별 일이 다 있다 싶었다.


“아... 정말 고마워요...”


'나도 사랑한다'는 말은 결국 하지 못 했다. 다음에.. 다음에 이야기하리라 마음먹고 상대를 보냈다. 배 나온 30대 후반의 남자에겐 너무 과분한 일이니까.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할까? 고민하다 결국 털어놓았다. 아내에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내 아내. 그 아내를 앞에 두고 말했다.


“여보. 나 사랑고백받았어.”

“에이~ 또 또.”


아내는 장난인 줄 알고 나를 놀리려 했다.


“아니... 진짜야.”


그리고 아내에게 사진 하나를 내밀었다.



둘이 한바탕 웃었다.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잘해준 것 하나 없는 담임이었다. 옆 반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헌신적이었다. 브이로그에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주는 것도 많았다. 사무적으로 대하는 나와는 참 많이 달랐다. 그런 부족한 담임에게 아이들은 큰 사랑을 준다. 감사할 것이 없는데 감사하다니... 기쁘기보단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고마워요.
나도 알고 있어요.

이런 이벤트는
내가 좋은 교사라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요.

대신

여러분이
얼마나 사려 깊은 학생이었는지를
말해준다는 걸요.”


겨울 방학이다. 이 친구들과 곧 작별해야 한다. 헤어지는 날, 나도 꼭 말하고 싶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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