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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Mar 29. 2021

신규 교사에게 학교는 너무 쉬웠다.

눈물 웅덩이

“이렇게 울다니. 뚝! 그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땐 이미 앨리스가 흘린 눈물이
방안에 가득 차서 큰 웅덩이가 되어 버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中-

2시간쯤 잤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큰일을 앞두면 밤을 꼬박 새우는 고질병이 또 찾아왔다. 아이들과 첫 수업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마저도 시작을 위한 당연한 의식처럼 느껴졌다. 개학식은 끝났고 이제 진짜 시작이다. 조회 시간은 8시 30분. 교무수첩에 적어 놓은 ‘초심’이라는 글자를 손으로 쓸며 혼자 잠시 비장해졌다. 조회 시작 몇 분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1층 복도는 활기가 넘쳤다. 서너 명씩 모여 나누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좋아 보였다. 


‘아.. 학교구나.’ 


또 혼자 감상에 젖었다. 지나가는 나를 보며 허리를 숙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하기도 하다가 또 마치 내가 온 복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양 의식하며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를 주목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을 텐데, 부끄러움을 느끼기엔 너무 경험이 없었다.


그런 나와 달리 다른 선생님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었다. 


“아니~
이것들이 복도에서
뭐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얼른 썩 교실로 들어가!”


3학년 부장 선생님의 목소리가 1층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이 빠르게 반으로 흩어졌다. 죄송한 비유겠지만 늠름한 양치기 개가 양을 모는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혼자 상상하고 웃었다.


“아유.. B선생님.
3학년 애들은 첫날부터 벌써 이런다니까~!

1학년은 애기들이라
선생님 말하는 대로 졸졸 잘 들을 거예요.”


“네. 선생님!”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내가 괜한 걱정에 밤새 뒤척인 것일 텐데..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니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가 담임을 맡은 1학년 2반은 4층이다. 


3학년은 1층과 2층을, 

2학년은 2층과 3층을, 

1학년은 4층과 5층을 쓰는 구조다.


언뜻 1학년이 가장 어리고 3학년이 가장 체력이 좋으니 1학년이 저층을 써야 할 것 같았지만 그 반대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떠올릴 수 있는 이유라면 고학년에 대한 예우 같은 것이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물론 내가 3학년 담임이었다면 당연히 1층은 3학년의 몫이라 주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 층씩 계단을 올랐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줄어들다가 4층에선 들리지 않았다. 복도는 등교가 늦은 몇 명의 학생들만 오가고 있었다. '4층까지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해 떠들 기운도 없는 걸까?' 궁금해하며 우리 반 문 앞에 섰다. 심호흡 한 번을 하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70개의 눈동자가 나를 좇았다. 삐걱거리는 교단으로 성큼 올라갔다. (맞다. 그 교단이다. 2012년에도 아직 교단이 있는 학교가 있었냐고 묻지는 말아줬으면 좋겟다. 2021년에도 여전히 우리 학교는 교단이 있다.)

출처 : 동진교구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조그만 목소리로 몇 명이 인사를 돌려줬다. 아이들 얼굴을 살펴보며 알았다. 내가 틀렸다. 아이들은 기운이 넘쳤다. 그저 아직 첫날의 긴장이 안 풀렸을 뿐이다. 입만 안 뗐다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부류 일지 샅샅이 탐색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6년을 거치며 수많은 교사를 만나온 아이들이니 교사 평가는 그들의 전문 영역이다. 초보 교사인 나만 그걸 몰랐을 뿐이다.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하루가 순탄했다. 생각보다 쉬웠다. 조회도, 수업도 즐거웠다. 모두가 나를 바라봤고 내가 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칠판에 적는 말을 그대로 노트에 따라 적었다. (어쩌면 나 강할지도..?)


게임이라면 연습 모드 같았다. 초보자가 하나씩 익힐 수 있게 아주 쉬운 일만 차례로 주며 경험치를 쌓게 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긴장은 풀리고 그 자리를 자신감이 채워가고 있었다. 


‘아.. 이 학교 교사라 행복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학교에 있어서 어른들이 못 찾는 것일 뿐이었다. 


“여러분. 오늘 하루 잘 보냈어요?”


꿈같은 일과가 마무리됐다. 종례를 하러 다시 들어간 교실에서 다시 아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아이들도 아침보다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즐겁게 연습 모드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여러분, 내일은...”
“서... 선생님...”


한 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K가.......”


“응?”


아직 아이들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그래도 K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걱정하는 얼굴로 교실 뒤편을 바라봤다. 시선이 모인 곳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이 빨개진 채 펑펑 울고 있는 K가 있었다. 당황한 나는 서둘러 K 옆으로 뛰어가 무릎을 굽혔다.


“K야... 왜 울어.. 무슨 일이 있니?”


K는 말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러움과 무력함, 그리고 공포감이 뒤 섞인 아이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도와달라고. 그 때야 알아챌 수 있었다. 뒷문 창문 너머에서 교실 안을 바라보고 있는 한 중년 사내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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