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04
수학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던 시절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 때 수학 시험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침투해야 할 것 같은 낯선 불안감에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저 시험 문제를 푸는 기계처럼 왜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많은 시간을 수학에 쏟았지만 만족핳 만한 반전은 없었다.
이제 수학에 대한 접근을 달리 해야 할 때다. 마치 올림픽 출전을 위해 기술 연마에만 신경쓰기 보다 국민들의 기본 운동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개념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칙한 수학책>은 수학이란 학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수학의 논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수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이라도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인 감수성을 키워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수학은 주어진 사실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추론하는 능력, 여러 개념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이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찾아내는 능력까지, 이 모든 능력이 수학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칙한 수학책>의 저자는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는 자신을 수학과 언어학, 코딩을 좋아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중학교 때부터 논리적 사고를 좋아했고, 답을 기억해 내는 학문보다 답을 찾아내는 학문을 더 좋아했다고 이야기했다.
저자의 프로필을 보니 수학을 꽤 좋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과학예술영재고등학교 수학 수석 졸업에 프리스턴 대학교 물리대회 은상, 미국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위 2~5%라니... 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p.25
수학은 신이 우주를 적기 위해 사용한 언어다.
갈릴레이가 수학에 관해 남긴 말입니다. 정말 낭만적이죠? 갈릴레이도 수학이라는 언어가 후대 학자들에게 얼마나 정교하게 발전할지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이제 수학은 우주를 기술하는 언어를 넘어, 인간의 모든 논리적 추론을 적어낼 수 있는 언어로 발전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겐 국어, 영어 시험보다 수학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2학년도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은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질 예정이어서 더 많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을 양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영어도 그렇지만 수학도 시험문제 풀이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수학이 어떤 학문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수학은 어떤 학문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있다. 그러고 보니 수학을 시험 대비를 위해 문제를 풀기 위해 공식을 외우고 풀이 과정만 공부만 했지,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그는 수학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수학을 지루한 계산이나 어려운 숫자로 가득 찬 학문으로 생각하게 만들게 되었고, 기피의 대상이 되는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또, 수학은 실용적인 학문이란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수학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수학계에서는 '세상의 모든 대칭성을 분류하는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라며, '유한 단순 대칭성(처음 듣는 말이다)'을 완전히 분류한 업적이 21세기 수학의 가장 큰 쾌거라고 설명했다. 물론 순수수학은 여전히 제대로 된 지원을 받고 있진 못하지만, 오직 논리라는 무기만으로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도저히 해답이 보이지 않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학문이 바로 수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도 수학이 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또, 수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기 위해 책장을 넘기는 것도 쉽진 않았다. 그동안 시험을 보기 위해서만 수학을 공부해 왔기 때문에 수학이란 과목에 흥미가 떨어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시험을 보기 위해 수많은 문제풀이를 했지만 근의 공식이나 삼각함수, 미적분 등. 지금은 어떤 수학 공식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나라 수학 교육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p.105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적 아르센은 한 박물관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보물이 들어왔다는 기사를 읽고 곧바로 보물을 훔칠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전 조사 결과 보물은 보라색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경보음이 울리는 파란색의 최첨단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정보까지 얻게 됐습니다.
그는 수학은 논리를 바탕으로 추상적인 진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수학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아 주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해 두고 있다. 특히 수학의 개념을 '엄밀함, 추상적, 논리적'이라는 3가지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1부에서는 수학의 엄밀함을 조명하는데 집중하고, 러셀의 역설과 괴델의 불안정성 등 수학의 언어를 규정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2부에서는 수학의 추상적인 측면을 조명했는데, 21세기 수학의 최대 쾌거로 추상화가 좋은 예시라고 설명했다. 또한 수학의 힘을 이용해 고차원과 무한 등 현실을 초월하는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고차원이나 무한 같은 초현실적인 대상은 직접 만져보거나 실험할 수 없으며, 오로지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탐구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3부에서는 수학의 논리적인 측면을 조명했다. 복잡한 수식이나 계산이 없어도 논리적 추론을 통해 다양한 문제에 적용해 봄으로써 수학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4부에서는 수학의 실용적인 측면을 조명했다. 즉, 실생활에서 수학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17세기 후반에 발견된 미적분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물리학과 화학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대학에서도 미적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던 시절이 떠오른다. 수학을 싫어해 수포자가 되진 않았지만 학창 시절에 이런 책 한 권 읽었다면 수학을 다르게 봤을 것 같다.
p.263
두 번째 숲은 커피의 숲이었습니다. 우리는 고정점이 없도록 커피를 휘젓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물음으로 커피의 숲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슈페르너 색칠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한참 이야기한 슈페르너 색칠은 커피 문제를 푸는 비밀 병기가 되었습니다. 색칠놀이로 브라우어르 고정점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은 무척 아름다웠죠.
<발칙한 수학책>은 그동안 쓰지 않아 굳어졌던 논리적 사고를 자극함으로써 사라졌던 수학머리를 되찾는 데 도움을 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에서는 복잡한 계산을 하고 이에 대한 설명 대신, 그림과 수학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되도록 책장을 천천히 넘기면서 책 읽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수학은 결코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는 문제 속에 감춰진 원리를 찾는 것이 수학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저자의 말이 그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의자의 다리가 4개인 이유, 종이를 끼지 않고도 흔들리는 의자를 바로잡는 일 등 수학의 개념을 이용해 풀 수 있는 문제들이 흥미롭게 소개되어 있다. 또한 삼각형의 3개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만으로도 지구가 둥글다는 실험과 그 결괏값으로 우주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하니, 수학의 심오한 세계에 놀라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에 수학 교과서를 공부하는 대신, 이런 책으로 수학의 개념을 잡고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알게 해줬다면 수많은 수포자들이 생기진 않았을 것 같다.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수학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포스팅은 웨일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