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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ug 01. 2022

촐랑이 다람쥐와 궁둥이 무거운 곰

촐랑거리는 다람쥐는 궁둥이 무거운 곰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내가 딱 촐랑거리는 다람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뭔가 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 촐싹거리며 시도는 해보는데,

정작 끈덕지게 파고드는 한 가지가 없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라.


살아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나도 궁둥이 무거운 곰이었던 분야가 두어 가지 있다.

태권도와 피아노였다.

태권도는 1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도장에 나가며

4단까지 땄고, 피아노 역시 중고등학생 시절 거의 매일 혼자서 뚱땅거렸는데

내가 그간 살아온 30여 년 간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아웃풋이 나오는 분야가 이 두 가지였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태권도에서 일하고 있고,

교회 예배의 반주를 맡아서 하고 있으니

어쨌든 무언가 결과물이 있는 셈인 것이다.


또 한 가지 나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남긴 것은 군대였다.

첫 기초 군사훈련을 다녀와서 얼이 다 빠지도록 고생하고는, 다음 훈련에 갈 생각에

몸서리치며 겁을 먹었더랬다. 비슷한 훈련을 3번은 더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했고

관둘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몇 개월을 더 했다.


결국 두 번째 훈련에 입소하기 며칠 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게 아닌 것 같다는 등의 너저분한 변명과 함께 교관님을 찾아가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때 교관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다른 일이라면 관둬도 좋다. 다만, 내가 봤을 때는 네가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니라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이 힘겨워서 인 것 같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 분명 힘든 순간은 찾아오고, 그런 순간마다 도망가버린다면 이뤄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정말 네가 다른 일이 하고 싶어서 찾아온 게 맞는 거냐?”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짚어내시는데, 더 이상 관둔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고

그대로 여름 훈련에 끌려가듯 입소를 했다.


결국 4번의 훈련을 끌려가듯 마치고 임관을 하게 됐고, 직업군인이 되었다.

누군가가 도와주어 궁둥이를 붙일 수 있었지만, 어쨌든 끈기 있게 한 가지를 붙들고 있으면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갈 수 있다는 좋은 교훈을 얻은 시간이었다.


궁둥이 무거운 곰이 되고 싶다.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촐랑대는 다람쥐는, 궁둥이 무거운 곰을 절대 이길 수 없다.

나에게 남은 것들은 영리하고 발 빠르게 시작했던 일들이 아니라,

끈덕지게 붙잡고 있었던 일들 밖에 없다.


성공하려면, 곰이 돼야 한다. 궁둥이가 1톤쯤 되는 그런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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