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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Dec 26. 2020

아침 기상

나팔소리가 울리지 않았으니 나는 잠을 자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걸 많이 힘들어했다.

우리 어머니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셨는데 저혈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나도 저혈압인가 혈압을 재보면 항상 정상이다. 나는 왜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 걸까.

어떤 책을 보면 정주영은 대표적인 아침형 인간이라고 한다. "해봤어?"라는 말로 유명한 불도저 스타일형.

나는 이렇게 부지런하고 저돌적인 스타일이 아니니 나에게 맞는 성공한 인간의 유형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발견한 이건희 유형. 게으른 천재라고 할까. 이건희는 새벽까지 골똘히 생각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정주영과는 반대인 올빼미형. 이거다 싶었다. 나는 바로 이건희형 사람인 게야. 그래서 아침잠이 많고 일어나는 힘든 거지. 좋아. 이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9를 목전에 둔 크리스마스 저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든다.

이건희형은 개뿔. 나는 그냥 게으른형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은 원래 이렇다.

그냥 내가 게으를 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든 이유는 내가 아침에 딱히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일어나서 해야 하는 일이 없으니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다. 겨울이 되면 아침 기상은 더욱 힘들어진다.

겨울이 되어 나의 기상시간은 침대에서 9시. 침대 밖에서 10시. 화장실에서 11시. 식탁에서 12시.

방 안에 딸린 화장실까지 가는데 최소 1시간이 걸리고, 방문을 열면 있는 식탁까지 가는데 최소 2시간이 걸린다. 이건 뭐하는 인간일까. 굼벵이도 이보단 빠르겠다. 굼벵이에게도 미안하니 오늘부터 나를 무척추동물이라 불러야겠다.


단군 설화를 보면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서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며 절치부심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가, 이 글을 무척추동물이 인간이 되기 위한 고군분투의 서막이라 부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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