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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an 18. 2024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좀 알아 봐 주세요.



10월 말에 심어둔 튤립 구근에서 싹이 트고 있다. 모두 다섯 개를 심었는데, 하나를 빼고 모두 봄을 기다리며 두근거리는 중이다. 그네들이 주인을 잊을 만하면 안방 베란다 창가를 지키고 있는 녀석들을 구경한다. 생명, 아니 그저 ‘꽃’이라는 이름 자체로 예쁠 것을 담보로 한 이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꽃이 좋다. 하지만 특별히 사거나 선물 받을 일은 잘 없다. 그래도 가끔 몇 송이 기분전환으로 나에게 꽃을 선물하는데, 꽃이 주는 설렘은 수고에 비해 정말 크다.


기억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안개꽃이었다. 그 뽀얗고 통통한 작은 꽃송이가 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의 깨끗함은 움켜쥐는 손에 힘이 들수록 더 탐스럽고 예뻤다. 다른 꽃들과 잘 어울리지만 아무 포장도 되지 않은 안개꽃 두어 단. 나는 그것이 가장 예쁘고 좋았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작은 팝콘 뭉치 같은 꽃송이들을 좋아했던 건 내 성격 탓이기도 했다. 안개꽃의 매력은 튀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느껴지는 잔잔한 예쁨이 있다. 사람들과 크게 부딪히지 않는 선에서 내 것은 제대로 지키고 싶었던 나와 안개꽃이 꼭 닮았다. 다른 꽃들을 돋보이게 하고 그것들과 잘 어우러지지만 사실 내 눈에 그 안개꽃 자체로 가장 예뻤던 것처럼 나도 나를 포장하길 좋아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실 이 글은 ‘나는 안개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거베라, 튤립 같은 꽃이 더 좋다’는 메모 한 줄에서 시작했다. 아마도 튤립 구근을 심으면서 적어둔 문장 같다.

어느 날엔가부터 결혼식 화환에 꽂혀 있어 너무 흔하게 여겼던 거베라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다른 꽃들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거베라 그 한 송이, 혹은 그 무리만 봤을 때 더욱 와! 예쁘다 했다. 튤립은 한 송이만으로도 예뻐서 이른 봄 내가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곤 했던 꽃이다. 둘 다 꽃 그 자체로 예쁘다.

안개꽃에서 거베라, 튤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가만 생각해 보았다. 뭐가 달라졌을까?

아! 꽃송이가 커졌다. 내가 나를 드러내고 싶은 방식과 그 정도의 차이가 이 꽃송이의 크기와 닮았다. 티 나지 않게 묻혀 지내고픈 나에서, ‘나 여기 있습니다, 나예요!’ 얼굴을 드러내는 나로의 변화. 나의 근황과 닮았다. 어디서나 튀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누군가 나에게 관심은 좀 가져주었으면 한다. 다른 것에 묻혀서 나를 잃으면 자꾸만 풀이 죽는다. 그러니 ‘나는 나로 예쁘고 멋진 사람이에요.’ 외치는 것이다.


안개꽃과 그것들은 꽃 한 대가 주는 존재감이 다르다. 송이가 큰 그 꽃들을 쥐고 나는 기쁘다. 무언가 크고 알차진 느낌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기 바쁘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매력에 빠진 때문일까.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너처럼, 싹을 내민 튤립 구근을 보면서 생각한다. 내가 너를 안다고, 많이 기다렸다고. 각각의 포기에서 어떤 색의 꽃이 필지 기다리면서 그 한 송이를 기다리는 동안 많이 설레고 기뻤다고. 그래서 나이가 들고 여물어 가는 중인 나도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꽃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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