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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pr 19. 2024

나의 살던 고향은

걷다가...



진주 토박이로 4년 정도만 빼면 붙박이처럼 여기, 이곳에 살았다. 인구 34만의 작은 도시라 여기 끝에서 저기 끝까지도 30분 안에 이동이 가능하다. 내가 어려서 살던 곳과 지금 친정 집은 누구나 아는 진주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동쪽, 지금 사는 곳은 그곳의 서쪽 끝이다. 작은 지역이지만 살아본 곳만 잘 아는 지라 동네 구석구석을 누빌 일은 어렸을 적 말곤 없었다.


최근 남편 일로 초등학교 때 살던 동네에 가게 되었다. 뭔가 낯선 동네 같았지만, 가만 들여다보니, 아! 저기 내가 친구들이랑 이쪽 길로 내려와서 꽃도 따고 놀았던 곳이다. 여기 교회엔 내가 난생처음 친구 따라갔었는데, 달란트 시장을 열더라. 맛있는 거 준대서 잠깐 따라갔는데 엄마 아빠한테 엄청 혼났지.

소 귀에 경읽기였나 모르겠다. 내 추억팔이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그래도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추억의 동네가 너무도 반가웠다. 우리 집에는 없던 피아노가 있던 친구네 집 가는 길,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앙칼지게 짖어대서 자주 놀러 가면서도 피해 다니느라 쩔쩔맸는데.. 그 집이 아직 있네. 여기, 우리가 자주 가던 현대문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구나. 그땐 이 아파트 오르막을 올라갈 때 너무 가파르고 높아 보였는데 그건 아니구나. 여기, 깨비책방이 있어서 나 300원짜리 책 빌려 읽는 거 무지 좋아했어. 여긴 지하 오락실. 가끔 가서 놀면 재밌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10살까지의 기억이 샘물 솟듯 퐁퐁 거린다.


가끔 제자리에 서서 어제를 뒤돌아보면 대부분 좋은 기억들만 남아있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잘한 추억들이 나를 쫓아 웃음 짓게 만들고 그로 인해 멈춘 걸음을 다시 옮길 채비를 한다.

그러고 보면 당시엔 무섭고 힘들고, 눈 감고 있으면 며칠이 후딱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할 만큼 나를 걱정의 무게로 눌렀던 일들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지, 내가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지 모르겠으나, 남은 것들은 그래도 좋았고, 좋았고, 좋았던 기억들 뿐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아무리 힘들도 어려운 순간에라도 결국은 웃을 일만 남을 테니 잘 견디어 보자. 현명하게 지금을 살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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