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작은 새싹을 보렴. 아직은 여리고 볼품없지만 곧 잎과 키가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거야. 그러니 너도 실망하지 마라. 지금은 봉오리에 지나지 않지만 곧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테니까.”
안데르센의 어머니는 몹시 실망하고 있는 아들을 꽃밭으로 데려가 말한다.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 가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열한 살 때는 동화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단지 평범한 아이에게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위로는 안데르센이 나중에 동화 작가가 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하루는, 안데르센이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다가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는 못생긴 아기백조를 보았다. 그리고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가난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고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볼품없지만 곧 어미처럼 멋진 백조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쓰게 된 작품이 ‘미운 오리새끼’이다.
오덴세 기프트숍 앞에서(2014년)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이다. 안데르센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 건물들은 동화 속에서나 보일법한 색감들로 채워져 있다. 곳곳에는 안데르센의 도시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기념품과 동상들이 눈에 띈다. 오덴세는 겉모습이 너무 예쁘고 동화보다 더 동화적인 곳이었다.
안데르센 기념공원 한가운데 그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에서도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간 그의 쓸쓸함이 전해진다. 호수 주변으로 오리들이 무리를 지어 거닐고 있다. 딸아이와 벤치에 앉아 공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막하리만치 고요하다. 딸아이는 어릴 적 잠자리에서 들었던 동화가 이곳, ‘오덴세’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사실에 신기해한다. 내 품에서 안데르센 동화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던 순간을, 놀랍게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 또한딸아이처럼 안데르센 동화를 읽으며 자랐다. 동화 속에 담겨있던 기쁨과 슬픔과 행복을 이 곳 오덴세에서 어렴풋이 꺼내어본다.
한적해서 쓸쓸해보이는 안데르센 기념공원(2014년)
천천히 작은 마을을 돌아보다가 우연히 길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따라가 보았다. 일렬로 늘어선 집들 사이에 있는 평범하고 자그마한 집이 종착점이었다. 보일 듯 말 듯 작은 글씨가 적혀진 팻말이 안데르센 생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없이 소박하고 작디작은 집이었다. 집 안에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 아버지의 만들다 만 구두와 공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가족의 손때 뭍은 가구와 소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정겨운 공간, 나무로 된 물건들이 닳고 닳아 잡으면 미끄러질 듯 반질거렸다.
안데르센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버지. 그는 가난하고 팍팍한 생활이었지만, 안데르센에게 집에서 인형극을 보여주는가 하면 책도 읽어주며 그에게 상상력을 키워주었다. 안데르센이 꿈과 상상을 펼쳤을 공간이 정겹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때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릴 적 함께했던 아버지의 선한 영향을 받게 된다.
안데르센 생가(2014년)
마을 전체가 잘 꾸며진 오덴세에서, 안데르센 생가를 둘러보고, 딸아이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안데르센 동화를 떠올려본다. 무엇보다 안데르센의 생애가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먹을 것이 궁핍하고 어린 나이에 가정을 책임져야했던 현실 앞에서 하고 싶은 것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안데르센. 그의 동화가 어릴 적 경험했던 내면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오덴세에서 알게 되었다.
딸아이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진다. 지금도 아주 어렸을 적, 여행에서 고생스럽던 순간을 이따금씩 기억해내곤 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련이 다가올 때 극복하고 견딜 수 있는 힘은, 어릴 적 느꼈던 부모의 작은 위로와 용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안데르센을 통해 알았다. 딸아이는 안데르센처럼 어려서 생계를 책임져야하고 부모를 여의는 경험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행에서 겪었던 고생이나 유학생활에서의 어려운 시간들 가운데 엄마와 딸로써 서로 위로하고 보듬었던 마음이 세상을 헤쳐 나갈 커다란 힘이 되기를 오늘도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