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벨기에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벨기에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신기해서 지도책을 펼쳐놓고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다. 유럽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온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야기가 재미났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을 여행하고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가 자신이 겪은 진기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처럼, 친구도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해외여행을 가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까. 더구나 유럽은 너무나 멀고도 먼 나라였다.
잠깐 스쳐 지나간 친구는 그로부터 나에게 소중한 꿈을 안겨 주었다. 유럽에 대한 로망도, 여행에 대한 도전도 어쩌면 그 친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 가득했던 내가,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동경했던 것은 친구의 유럽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였으니까. 아홉 살 소녀에게 호기심을 일으킬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일 년에 고작해야 서너 번, 살던 동네를 벗어날 수 있었던 나로서는 유럽여행이란 꿈같은 일이었다. 이후로 성인이 될 때까지 틈만 나면 세계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가고 싶었다. 호기심은 나를 자극했고, 원하는 대로 나를 이끌었다.
인터넷이 없던 어린 시절나에게 벨기에란, 친구가 맛보게 해 준 초콜릿이 다였다. 어찌나 맛있든지, 어른이 되어 벨기에에 가면 꼭 초콜릿을 사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렇게 순수하게, 작은 소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때 배낭여행을 계획하면서 0순위로 당연히 벨기에를 택했다. 모두들 의아해했다. 파리도 아니고, 런던도 아니고, 로마도 아닌 브뤼셀이라...... 친구로부터 들었던 특정 장소에 도착해서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꿈만 같았다. 처음으로 가 보았던 유럽, 그중에서도 벨기에에 있는 나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
딸아이와 함께 한 서유럽 여행에서도 당연히 벨기에는 우선순위였다. 꼭 함께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었다. 홍합요리와 와플 먹기, 오줌싸개 동상에서 사진 찍기(썰렁하더라도), ‘그랑플라스’에서 야경 보며 차 마시기, 초콜릿 왕창 사 먹기(아홉살 때 친구가 건네준 초콜릿 하나가 너무 맛있었다)등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던 공간을, 대학 때 홀로 배낭여행했던 공간을, 이제는 딸아이와 함께하게 되었다. 와플도, 오줌싸개 동상도 좋았지만 나에게 브뤼셀이란 어릴 적 로망 자체였다.
오전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체크인만 하고 빠르게 밖으로 나와 지하철을 탔다. 새벽기차를 타느라 아침을 거른 탓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추억의 장소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점심으로 감자튀김과 맥주를 곁들여 홍합요리를 먹었다. 목적지인 ‘그랑 플라스’ 가는 길에 작은 골목 양 옆으로 홍합요리 전문점이 늘어서 있다. 딸아이는 한 달이 넘는유럽여행 동안 피자, 파스타만 줄곳 먹다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홍합을 맛나게 먹었다.
드디어 브뤼셀의 상징이고 관광의 중심지, 그랑플라스에 왔다. ‘큰 광장(Grand Place)’란 뜻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시청사, 길드하우스, 왕의 집으로 둘러싸인 광장이다. 딸은 작은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광장에 놀란 얼굴이었다. 자그마한 골목들과 소박한 사람들에 비해 ‘그랑 플라스’는 여전히 위엄 있고 화려했다. 유럽여행은 몇 년, 몇십 년 후에 다시 찾아도 변하지 않는다는 매력이 있어서 좋다. 그랑플라스는 오래전 모습 그대로였다.
그랑 플라스를 가로질러 다시 골목으로 접어들면, 예전에 맛보았던 와플가게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줌싸개 동상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은 오줌싸개 동상 앞에서 사진 찍으려고 그날도 줄을 서고 있었다. 사연 많아 보이는 동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브뤼셀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오줌싸개 동상과 동상이 되어준 거리예술가(2012년)
브뤼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믿기지 않을 만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변한 건 나 자신뿐이었다. 모습도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들려준 브뤼셀을 만난 후, 대학 때 그곳에 처음가보고, 딸과 함께 다시 브뤼셀을 찾게 된 그날까지대략 35년이라는 시간 속에 벨기에는나와 함께했다.
세월이 흐르고 딸아이와 나는모습도 생각도 많이변해가고 있다.때로는 고민하고 때로는 좌절하며 성숙해져 간다. 힘든 순간이 오면 다시 기운 내어 보기도 한다. 세월과 무관하게 공간은 여전히 남아있어 우리에게 추억을 선물한다. 기억을 꺼내어준다. 브뤼셀은어린 시절을 호출해준 특별한 여행지이다.‘오줌싸개 동상’의 초라함조차도 그토록 사랑스러운 이유는, 미지의 나라를 동경했던 초등학생 소녀의 꿈을 이뤄준 고마움 때문이다.
예전에 비싸서 사 먹지 못하고 구경만 했던 초콜릿 가게에 들렀다.
“먹고 싶은 초콜릿 맘껏 담아.”
친구가 들려주었던 미지의 나라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초콜릿을 딸아이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브뤼셀이나에게 초콜릿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딸아이도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딸이 성인이 되어 누군가와, 혹은 홀로 브뤼셀을 찾게 된다면 이곳을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