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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순 Sep 14. 2022

3송이 꽃들에게

내 현생에 대한 작은 이야기

사무실에 발랄한 3송이 꽃들이 입고되었다. 그들은 수많은 화단 중 가장 척박한 곳에 심겨졌고, 나는 이들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지나치게 빨리 시들어가는 보송이에게는 적당히 물을 주고, 너무 활짝 피어버리는 상큼이에게는 일부러 물을 주지 않는다. 이미 심어진 꽃들은 회생이 불가했다.


텅 비어버린 잿갈빛 거죽에 아무리 행복을 기원한 물을 뿌려봤자, 투두둑. 튀겨져 나가기 마련이었다. 햇빛을 머금어 빛나던 반짝이는 물줄기는 흙에 담기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나간다. 물주전자에 담긴 물은 그렇게 줄어들어만 간다.


나는 물을 주는 재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봐도 어차피 이곳은 시들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기후변화를 막는다 한들, 이미 기근은 정점을 찍고 있다는 것을. 새로운 우주를 찾아 떠나야 해. 어린 왕자처럼. 햇빛이 아닌, 이번엔 별빛을 담으러 우주로 갈 거야.


우주로 갈 거야, 우주로 갈 거야. 조금이나마 남은 물이 새지 않도록 꼭꼭 잘 봉했다가, 우주로 들고 갈 거야. 그곳에 가서 별을 잔뜩 담아다가 지친 꽃들에게 나누어 줄 거야.


아가들아, 화단이 좋다면 거기에 있어도 좋아. 하지만 이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주를 무서워하지 말아. 어둡고 발이 닿지 않는 곳이 아니야. 어두운 만큼 마음껏 피어날 수 있는 곳이야.

언제든 나에게 놀러 와.


이 무한한 공간이 너희에게 두려움이 아닌 든든함으로 다가오는 어느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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