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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공개 Jun 26. 2024

모범 과속 스캔들

돈에 미쳐서 결혼하는 우리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결혼은 글렀으므로 나라도 미리 집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실로 가모장적인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혼수는 새것 필요 없고 쓰던 자취 살림으로 충분하니, 내 명의의 집 한 채만 있으면 완벽한 신붓감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난생처음 결제한 유료 강의 수강생의 대부분은 미혼 여자들이 많았다.      


혼자서 청약 공부를 하고, 혼자서 임장도 다니고. 청약 2순위에 들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기를 감행한 적도 있었다. ‘인생은 실전이지!’라며 여기저기 청약에 넣은 결과 무려 6번의 예비순번에 당첨되었고, 모두 내 앞에서 짤렸다. 내 집 마련은 물거품이 되었다. 내 인생은 늘 불운하다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돌아보니 천운이었다. 그 해 2021년도였다.  

 

내 집 마련은 글렀고, 월급은 오르지 않으니 막막할 뿐이었다. 이대로는 결국 혼자 살 것 같았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었겠지만, 부자가 되어 나도 남들처럼 펑펑 돈을 쓰고 싶었다. 수년동안 일을 했는데도 고작 이것밖에 벌지 못하니 억울하면서도, 경제는 쥐뿔 뭐가 맞는 소리인지조차 모르겠으니 답답한 마당에, 전쟁은 터지고 사기는 판을 치고 누구는 파산 나고 세상은 망했다고 하니 불안할 뿐이었다. 그때마다 함께 돈에 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던 결혼 선배님이자 돈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언니, 여자는 미안하지만, 결혼하는 게 돈이 되는 거야.‘

‘돈은 모일수록 더 빨리 커져.'     


돈에 대한 조바심은 그를 만나게 해 준 오작교가 되었고, 그와 나는 로맨스는 차치하고 현실적인 돌다리부터 빠르게 두들겨댔다. 둘 다 결혼할 생각이 있는가? Yes. 팔, 다리, 정신머리 멀쩡한가? Yes. 잘 살 수 있는가? 뭐, 그건 살아봐야 아는 거 아니겠는가. 어느 누구와 살건 자신 있었다. 어차피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고,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맞춰가는 게 부부 아냐? Yes.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남녀가 만나 가속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결혼할 거지?”

“음... 뭐...”

“딱히 할 남자 없다며”

“음... 그치...?”

“그럼 어차피 할 거 동거부터 해보자, 돈도 아끼고 좋잖아”

“음... 그래!”     


그날로 그는 가게를 팔아버리고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덜컥 무서우면서도 그가 거침없이 배수의 진을 치며 나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영업이 아닌 새로운 직장으로,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괜찮다고 멋있다고 고맙다고 그를 응원했지만, 나와 함께 살기 위해 나이 먹고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그였기에, 숨 쉬면 날아갈듯한 작은 월급을 보니 막막하곤 했다.


성인 남녀가 각자 관리하던 경제 습관을 하나로 합치려니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다. 일종의 심리전이랄까. 기싸움 그런 거. 인터넷에서는 항상 "초장에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말만 봐왔던지라 ‘지금이 그 순간인가..?’ 싶으면서도, 마냥 주도권을 주장하기에는 그가 나보다 더 돈을 굴리는 그릇이 커 보였다.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아는 게 약이라는 것에 동의했기에 서로 모든 수입 계좌를 공개하기로 했고, 알뜰하다고 자부했던 나는 그 앞에서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그가 돈을 관리하는 습관은 정말인지 ‘살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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