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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금택 Apr 09. 2021

망했어도 마음은 부여잡고

코로나가 내 발목을 잡아도

온 세상이 갑자기 움직이기를 멈췄고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분명 누구에게나 낯선 그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씩 이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을 갈아 넣어 가며 고생한 덕을 보는 거였다. 어쨌든 그 고생도,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그 와중에 점점 안정의 기미가 보였는데, 결국 이 상황이 이제는 적응해야 하는 내 일상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밥을 했다. 밥 하는 시간 외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 교육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한 때 SNS에서 보던 ‘밥하다 죽은 엄마’가 다름 아닌 내 미래가 아닐까 가끔씩 섬뜩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학교가 문을 닫은 이후 비영어권, 즉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살다가 이민 온 우리 부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이의 언어 발달이었다.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는 -지금 생각하면 큰 걱정거리도 아니었나 싶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면 영어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버리는 상황이었다. 학교가 문을 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우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엄마, 아빠 외의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단순히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해. 정말로 막막했다.


어느 날, 아이가 잠들고 식탁에 앉은 나와 남편은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만 있었다. 며칠 째 감지 않은(못한) 머리와 가시지 않은 거실의 음식 냄새, 주방에는 낮에 만든 식빵이 식은 채 방치돼 있었다.


"나 어떡해...”


침묵 속에서 갑자기 복받친 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가  태어났을  매일 쪽잠을 자며 수유하던 그때보다 지금이  절망적이었다. 앞으로 어떡해야 할까. 자꾸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숲을 내려다보지 못한 ,  나는 살림할 시간을 줄여  시간을 만들지 못했을까,  오늘 아무것도 못했을까 라면오늘 당장만 두고 나를 쪼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책하면서도 매일 내일의 식단을 짜고 간식을 만드느라 시간을 썼고 다시 밤이 되면 나에게 화를 내는 패턴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많이  생각이다. 그렇다고 내가 해온 육아노동과 가사노동의 시간을 '이러고 있을 ' 퉁쳐서는  된다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러움과 불안함과  너머의  자신에 대한 실망, 그러다 나는 잘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긍정. 이런 복잡한 마음이 뒤얽혀 있다가 어느새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울음터져 나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 나이로 이미 마흔이었고 시간이 지체될수록 취업의 기회는 줄어들 것이 자명했다.


남편은 묵묵히 내 울음소리를 듣다가 소리가 잦아들자 말했다.


"걱정 마. 앞으로 잘하면 돼.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 보자."


남편의 말은 매우 틀에 박힌 대답이었지만, 그 말이 맞았다. 앞으로를 생각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울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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