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의 맛을 좌우하는 것

한식을 둘러싼 기억을 찾아서

by 조찬희

한국에 다녀온 지 이 주쯤 지났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었고, 8월의 서울 날씨에 지쳐 있던 나는 매일 아침 매사추세츠의 서늘한 여름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몸 안에 들어찬 더운 기운을 빼내고 있었다

“귀한 손님이 집에 다녀가셨어.”

엄마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아주 오랜만에 음식을 했다고 운을 띄우더니, 무슨 음식을 했는지, 그 조리법은 무엇인지, 그 음식을 손님이 어떻게 드셨는지까지 이야기 구성을 완벽하게 갖춰서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음식 이야기를 좋아한다. 맛깔나는 설명으로 귀와 침샘을 자극하는 건 디폴트고 적절한 타이밍에 곁들이는 추임새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요즘 유행하는 모든 콘텐츠를 포함해 나의 올타임 최애라고 할 수 있다.

그날의 메뉴는 식혜였다. 엄마는 오랜만에 식혜를 담갔다고 했다.

“엿기름을 찬물에 박박 씻어. 거품이 안 날 때까지. 야, 그렇게 깨끗하게 씻는 집 없다. 나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 손님이 얼마나 맛있게 드시던지. 또 없어요? 또 한 잔 없어요? 하면서 밥풀까지 싹 다 긁어 드셨다니까.”

본인 고유의 식혜 레시피를 사실 묘사하는 것도 모자라 적당히 섞인 과장과 추임새까지. 나는 엄마의 목소리와 호흡까지 들이키면서 정신없이 식혜의 단맛을 상상했다. 먹방을 귀로 듣는 거나 다름없달까.

엄마와 나는 신이 나서 자연스럽게 옛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할머니 댁에서 식혜 했을 때 식혜에 생강도 들어가지 않았어?”

“어, 생강은 당연히 넣어야지.”

“난 그때 생강 들어 있었던 게 아직도 생각나.”


시골집에서 엄마가 담그던 식혜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친가는 거의 매달 제사를 지냈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제사가 있는 날이면 집안의 여자들이 총동원돼 모든 제사 음식을 손수 만들어 올렸다. 그 수많은 음식 중에서도 식혜는 아직 입맛이 영글지 않던 어린이가 먹을 수 있는 최고의 디저트였다.

중학생쯤이었을까. 나는 이렇게 달달하고 맛있는 음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무 궁금해 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었다. 그런데 그때는 찰진 설명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제사 음식은 너무 노동집약적이었고, 여자들의 체력을 갈아 넣는 중노동이었다. 다만 생각나는 건, 식혜가 든 보온 밥솥 뚜껑을 처음 열었을 때의 기억이다. 뽀얗고 걸쭉한 국물과 그 아래 밥풀을 상상하며 밥솥 뚜껑을 열었을 때의 놀라움.

“생강을 넣어???”

어린이 입맛에 생강은 달콤한 음식과 상극인 맵고 무서운 식재료였기에, 그 당시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밥솥에 든 생강 조각을 노려봤다.

“그럼, 생강은 꼭 넣어야 해.”

엄마의 무심한 한마디가 귓가에 오래 남았고, 나는 재빨리 식혜에서 생강 맛이 났는지 복기했다. 그러고 나서 새로 담근 식혜를 홀짝였을 때, 나는 비로소 식혜 한 모금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생강의 향을 느꼈다. 그건 신세계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식재료가 음식의 기품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날이었다.


그 당시 엄마의 설명이 잠들어 있던 내 기억과 감각을 때렸다. 꽃무늬 밥솥에 둥둥 뜬 생강 조각이 떠오르고, 그 식혜를 한껏 들이켜던 목 넘김의 감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 식혜와 함께 씻겨내려간 제사 음식의 기름기까지.

“나도 해주지. 나 한국 갔을 땐 왜 안 해줬어.”

이때 마흔 넘은 중년은 체면을 포기했다. 애초의 의도는 최대한 설움과 원망을 숨기면서 농담식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식혜의 기억이 나를 무차별하게 공격해 어느새 눈물이 맺혀 엄마에게 볼맨 소리를 해 버렸다.

“야, 40도 넘는데 누가 식혜를 하냐.”

내 감정과 달리 쿨한 엄마의 대답에 눈물이 쏙 들어가긴 했지만, 나는 그때 엄마의 음식, 집밥이 미친 듯이 그리웠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위 이민자, 고향을 떠나 아주 멀리서 사는 사람에게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매년 방문하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식에 큰 아쉬움이 없었다. 미국도 예전 같지 않아서 한국의 제철 음식을 다 챙겨 먹을 순 없어도 아쉬운 대로 방편과 노하우가 생겼다.

나는 한국에 갈 때마다 경험했던 미식의 추억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고 보니 갈 때마다 같았던 적이 없었다.

김장독에서 꺼낸 김치는 시골집이 사라지면서 김치냉장고의 김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제사를 거의 지내지 않게 되면서 엄마가 직접 담근 술이나 다식 같은 것도 저절로 기억에서 사라졌다. 또 엄마가 나이 들어가면서, 아니면 내가 직접 음식을 해 보면서 엄마에게 더는 그 험한 잔칫상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맛집 탐방 문화가 유행하면서 집밥보다 외식, 그것도 한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미식 트렌드를 경험해 보기에 급급했다.


일흔 된 엄마한테 식혜 안 해준다고 떼쓴 중년이 되어 버리고 나서야, 나는 내 안의 한식 역사가 매우 역동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십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주 조금씩 예전에 먹던 음식의 맛을 잊어갔다는 사실도. 엄마의 음식을 먹고 “그래,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이야”라고 반응하기보다 “엄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새롭다!”라고 반응한 횟수가 많아졌다. 엄마의 음식도 진화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도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입소문을 통해 자신만의 맛을 업데이트해 왔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가 아는 엄마의 맛은 그저 추억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웠다. 마침 에드워드 리 셰프의 에세이 <버터밀크 그래피티>에서 셰프가 한국 음식을 지키고자 노력한 가족의 일화를 읽었을 때, 내 조바심이 극에 다다랐다. 뭐든지 영영 사라지거나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내버려둔 내 어리숙함과 철없음에 눈물이 터졌다.

그래서 서둘러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게 변화하고 잊히기 전에. 철없이 지나간 시간에 발을 구르지 말고 어른스럽게, 나는 내 맛의 역사를, 내 과거를 돌이켜보고 싶다. 미국에서, 한국에서 마주한 음식과 사람과 우리의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음식 문화가 점점 세분되어 갈라지고 정보도 넘치는 이때, 그로 인해 가려진 작은 다발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내 기억을 차근차근 꺼내놓고 싶다.

수,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