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와 맥 앤 치즈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탄수 x탄수라는 호방함의 미학

by 조찬희


“당신의 인생을 한 가지 음식으로 정의하시오.”라는 시험지가 책상 앞에 놓인다면 나는 고민 없이 ‘떡볶이’라는 단어를 적을 것이다.

지금도 여러 음식이 스쳐 지나가지만, 기억이 내 머릿속에 처음 자리를 잡던 시절부터 ‘떡볶이’는 내 안에 깊이 각인된 음식이다. 한국인이라면, 나와 비슷한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얼추 비슷한 답을 떠올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소울푸드. 떡볶이. 내 두 발끝이 어디에 있던 떡볶이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초등학교 후문 앞 문방구, 고등학교 매점 구석 초록 플라스틱 접시 위, 어학원 다니던 시절 종로 거리 포차 위 김밥, 순대와 함께, 조교 시절 대학교 정문 건너 골목길 다른 연구실 조교와 몰래 먹던 즉석떡볶이 집에, 연애할 때 부산, 전주 영화제를 전전하며 맛보던 그 동네 명물 떡볶이집과 퇴근 후 홍대 앞에서 동료와 먹던 떡볶이 트럭에까지. 나이가 들고 삶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떡볶이는 늘 다양한 얼굴로 내 곁에서 나를 위안했다.


미국에 와서도 떡볶이는 내게 엄청난 존재감을 남겼다. 이제 마땅히 사 먹을 데가 없어졌기에, 레어템이 되고야 말았기에 나는 떡볶이 만들기에 집착했다. 우리 집 냉장고엔 어묵과 떡볶이 떡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고, 휴대폰이 바뀌어도 SNS에 떠도는 유명 떡볶이집 레시피 차트는 하트가 찍힌 채 중요 사진첩에 여전히 저장되어 있다. 고된 하루 끝, 혹은 해이해진 주말 점심에 저장된 레시피를 하나씩 까먹듯 만들어 보는 재미를 잊지 못한다.


해외에 살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 한식에 관한 스몰 토크를 자주 하게 된다. 대화 상대가 한국인이든 비한국인이든 상관없이 어색할 때 한식 카드를 꺼내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스몰 토크가 가능하다. 대화가 무르익어 좋아하는 한식이 뭔지 이야기할 찬스가 오면 나는 정해진 답을 당당히 내뱉는다.

"떡볶이요."

내 대답의 반응은 크게 “오, 저도요!” 아니면, "그게 뭔가요?"로 갈린다. 그런데 오래전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런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떡볶이를 싫어한대요."

넌지시 던져진 그분의 대꾸에 나는 그 저의를 차마 파악하지 못한 채 방어적으로 답했다.

"왜요?"

"그 끈적거리는 식감을 싫어한다나 봐요."

음. 끈적거리는 식감. 떡볶이가 끈적거렸던가. 나는 떡볶이란 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끈적거리다'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한참 생각했다. 끈적이 아니라 쫀득 아닌가. 쫀득은 긍정, 끈적은 부정의 단어인데....'끈적거린다'는 표현이 어쩐지 떡볶이에 대한 비하처럼 느껴져 나는 마치 내가 모욕당한 듯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아직 한식의 세계화를 외치던 시절 나는 백인이 90% 이상인 동네로 이사 왔고, 누군가에게 떡이란 음식이 이에 잘 붙고 질척거려 낯설 수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식탁은 조금씩 변했다. 로컬 맛집이나 특별한 음식을 향유하던 나와 내 파트너는 해외에 산다는 낯선 감각이 희미해지고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게 되면서 간단히 때울 수 있는 싸구려 피자, 전미에 점포가 수만 개인 프랜차이즈의 치즈버거, 대충 만든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는 미국 시트콤 속 엄마 캐릭터처럼 머핀을 굽고 캐서롤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리고 아이가 맥 앤 치즈를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마트 한 칸을 통으로 채운 2불짜리 맥앤치즈 상자를 처음 구매 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는 맥 앤 치즈에 대해 이상한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거 그냥 탄수화물에 싸구려 치즈가루 잔뜩 뿌린 정크 푸드 아니야?"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날이 서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심지어 그때 나는 그런 내 관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맥 앤 치즈'를 맛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제대로 된 맥 앤 치즈라는 게 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꽤 좋은 레스토랑에 갔고, 나는 고급 치즈 몇 가지를 블랜딩해 유기농 꼰낄리에 파스타에 버무린 뒤 항생제 먹이지 않은 돼지고기로 만든 스모크드 베이컨 스프링클을 뿌린 맥 앤 치즈를 주문했다. 뜨끈한 접시를 앞에 두고 엄근진한 태도로 시식하는 내 모습을 이제 와서 떠올리자면, 음… 부끄러워서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건 그냥 알프레도 파스타 아니야?"


그때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의 나는 각국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의 음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제 식대로 납작하게 후려친 뒤 합리성으로 포장하는 미국의 식문화에 단단히 심통이 나 있었던 것 같다. 떡볶이의 위대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끈적거려 치아에 붙는 자극적인 탄수화물 덩어리 취급한 그들에게 혼자 꽁해서 나 또한 맥 앤 치즈를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런 것을 수요 없는 공격이라 하나?ㅎㅎ)


요즘 유튜브나 SNS에 미국 저소득층의 식사 준비라는 숏폼 영상이 많이 뜬다. 영상을 넘길 때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맥 앤 치즈를 떠올린다. 정제 밀가루로 만든 마카로니와 정체 불명의 치즈 가루로 구성된 2불짜리 인스턴트 맥앤치즈는 저렴한 마트에서만 볼 수 있는 정크 푸드지만, 그 백 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소울푸드이기도 했다. 건강한 맛보다 편의성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 건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속사정이란 게 존재한다는 것을 떡볶이로 인해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왜 맥 앤 치즈에 대해선 이성적인 마음이 되지 못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레시피는 간단하다. 멸치 육수에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을 같은 비율로 풀어 끓이고 떡과 어묵을 넣어 약불에 조린다. 가끔 죄책감이 들면 양배추나 대파, 양파, 삶은 달걀 같은 자투리 음식을 듬뿍 넣는다. 자극적인 게 필요하면 불닭 소스를 넣는다. 그날그날 내 영혼의 상태에 따라 건강을 앞에 두기도 하고 편의성을 우선하기도 한다. 무슨 마음으로 만들든 떡볶이는 언제나 내 영혼을 달래주는 소울푸드다.


미국 유명 마트인 트레이드 조스에서도 떡볶이 밀키트를 파는 세상이 되었다. 굳이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떡볶이는 끈적거리는 음식이 아니라 쫀득한 음식이라는 걸 이제 누구나 안다.

떡볶이와 맥주, 떡볶이 후 볶음밥, 떡볶이와 김밥. 나는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기 위해 삶은 달걀을 먼저 먹을지언정 탄수x탄수 조합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나이가 되었지만, 당뇨가 오기 전까진 한 달에 한두 번은 어쩔 수 없다는 호방한 마음을 먹고 만다. 그런 입맛의 우월감이란 것도 있는 거란다. 이런 엄마를 둔 아이라서 그런지, 우리 집 아이도 고급 레스토랑의 세 가지 치즈로 맛을 낸 맥앤치즈보다 파네라의 5불짜리 맥 앤 치즈를 좋아한다. 어쩌면 아이의 머릿속에도 모르는 사이 소울푸드에 관한 철학이 새겨져 버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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