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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바냐 Jul 30. 2015

기억의 풍경

from 우리 아파트

 처음 다녔던 회사의 사무실은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멀지 않았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30분 정도 걸렸고, 학창시절 3년간 걸어 다녔던 중학교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맘때면 골목길 주택담장에 빨간 넝쿨장미가 피어 있었고,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출근했다. 지금의 출근길에 비하면 비단길이 따로 없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하루 종일 씨름할 업무와 사무실에서 울릴 성난 전화 벨소리를 걱정하느라 주변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다.

 주말이면 삼촌이 주신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멋들어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호기롭게 현관문을 차고 나왔지만, 콤파스처럼 집과 사무실 주변을 맴돌 뿐이어서 내가 서 있는 그곳이 그저 평범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흔해빠진 넝쿨장미와 석가탄신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길가에 걸려있는 연등에 렌즈를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사무실이 본사와 합쳐지면서, 서울로 옮겨오게 되었다. 여유 있던 기상시간이  2시간가량 당겨졌고, 터질 것 같은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으면서 편도로만 버스와 지하철을 4번 갈아타는 출근 여정을 떠나야 했다. 여름이면 환할 때 퇴근하더라도 집에 도착할 때 쯤이면 어둠이 내려앉았고, 겨울엔 사무실을 나설 때부터 캄캄한 밤 길에 추위를 뚫고 집에 갈 생각에 아득해졌다. 아직은 익숙지 않은 자리에서 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집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시절, 그 아침에 당장이라도 세상이 끝날 듯 한숨 쉬게 하고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일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았던 단조로운 일상과 풍경에 대한 잔상은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진해져 갔다. 마치 렌즈 속 희미한 배경으로 초점이 옮겨져 선명해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그 또렷해지는 기억이 눈 앞의 모니터를 가득 채우면, 순간 내가 앉아있는 서울 사무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엑셀화면이 뿌옇게 흐려지고,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해 손을 훔치며 현실로 돌아왔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그 길을 다시 걸을 때가 있다. 그 당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만, 2011년 6월 이전의 느낌과 풍경은 더 이상 가질 수 없다. 이제 거기에 손때 묻은 내 첫 일터가 없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길가의 여러 상점들이 모습을 바꾸었다. 나 역시 첫 회사를 나오고, 몇 차례 큰 변화를 겪으며 생각과 시야가 달라졌다. 시간은 기억을 아름답게 미화한다. 익숙하다 못해 당연해서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 시간의 풍경은 소박하지만 여유 있었다고.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눈을 감아야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꿈같은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겠지.


 나는 지금도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출근하느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모니터 앞에서 일하고 있다. 흐린 금요일, 오늘 같은 날이면.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하고, 주변 풍경에 눈 돌릴 새 없이 곧장 집으로 뛰어들어가 엄마가 해주는 저녁밥을 먹으며 음악방송을 보던 어느 금요일 저녁으로 돌아가고 싶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내가, 너의 그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 걸 얘기한다면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6월 5일 금요일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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