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1505호
지난달, 오랜만에 아빠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저의 첫 글, "당신의 연필깎이"를 읽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니 그래 오래된 것도 기억 나더나?"
그럼요 아빠. 저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는 걸요.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이제야 비로소 하나씩 깨닫고 있어요.
"나는 요새 니 대학교 다닐 때, 용돈을 넉넉하게 많이 못 줘서 그게 참 후회가 된다."
아니에요, 아빠. 저는 엄마 아빠 덕분에 편하게 대학 생활을 했는걸요. 두 분이 못하신 대학생활을 즐겁게 해보라고 등록금을 대어 주시고, 매달 용돈도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월요일 아침에 기차 타고 학교 기숙사로 갈 때면, 기차역까지 태워주시면서 만원, 삼만 원을 쥐어주셨고요. 생일이면 용돈을 곱게 봉투에 담아 제 책상 서랍에 두시고, 어느 날은 문득 통장으로 용돈을 부쳐주셨지요. 아빠가 힘들게 버신 돈을 그냥 쓰기 아까워 통장에 모았더니 일 년에 팔십여 만원이 되었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가 주신 용돈에 알바비를 보태 어학연수를 갈 수 있었는걸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때부터 명절에 친척들한테 받은 용돈은 모두 모아 제 통장에 넣어주셨지요. 초등학교 때는 매일 아침 200원씩 나와 동생의 용돈을 하루도 빠짐없이 TV 위에 얹어놓고 출근하셨고, 가끔 토요일은 500원씩 놓고 가셔서 신나는 토요일 기분을 낼 수 있게 해주셨어요. 교복을 입고 중학교로 입학하던 날, 엄마 몰래 비상금 하라고 만원을 교복 속주머니에 넣어주시기도 하셨지요.
중고등학교 때는 누나가 동생한테 용돈도 주고 그래야 우애도 더 생긴다며, 제 비상금과 동생 줄 비상금도 같이 저에게 주셨지요. 가끔은 제가 중간에서 다 쓰기도 했는데, 아마도 아빠는 아셨겠지요?
넉넉치 않은 살림임에도 용돈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넉넉히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후회는 두 분이 어렵게 버신 그 돈을 철없이 썼던 딸의 몫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