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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타치 Jan 07. 2024

돈의문마을에 가보셨나요?

누구나 이용 가능한 뜨끈한 온돌방이 있답니다.

서울에 오랫동안 살았었지만 돈의문마을엔 처음 가봤다. 명동, 광화문, 경복궁 등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알만한 그런 중심지만 다녔다. 화려한 건물들을 뒤로하고 한옥마을로 구성된 돈의문마을은 굉장히 생경하다. 게다가 돈화문과 헛갈렸다.

이미지 출처 pixabay

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보물 제383호이다. 실제 존재한다. 돈의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 문 중의 하나로 서쪽에 있는 대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니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사방을 둘러본들 돈의문을 찾을 순 없었던 거다. 막 서울에 상경한 시골뜨기처럼 두리번거렸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문이 보이지 않았으니 잘 못 내린 건가 의심했다. 주말의 이른 아침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는 인터넷이 어디서나 빵빵 터지는 대한민국에서 핸드폰에 물어보면 될 것을 왜 길가는 사람을 찾는지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날도 춥고 허둥지둥 나오느라 가방 속 엔 뭐가 들었는지 주인도 모르는지라 깊숙한 어딘가에 박혀있을 핸드폰 찾기가 귀찮았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뒤졌다. 장갑을 깜박한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빨갛게 얼어붙은 손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쇠부치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가방 속의 여기저기를 더듬어 겨우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길 위에 서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호호 불며 따뜻한 차 한잔이 간잘했기에 주위를 둘러봤다.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마당옆엔 한옥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라는 푯말과 함께 "무료개방"이라는 반가운 문장도 보였다.

요리 리 살펴봐도 이용 시간은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전자시스템으로 되어있는 도어록을 밀어보았다. 스르륵 열렸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처럼 안내문에 적혀있는 대로 했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디딤돌 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발을 들여놓았다. 방 안의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누군가 빗질하고 닦아놓은 온돌방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온돌방이라고 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는데 바닥의 따뜻한 열이 발바닥에 전달되며 잔뜩 움츠리고 있어서 긴장됐던 몸이 노곤해졌다. 누군가 계속 사용하는 공간이 아닌가 싶게 따뜻하다. 냉방이라도 찬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런 환대라니.

'여기서 쉬어도 되는 거 맞나?' 자꾸 의심이 들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근처에 일행들이 오면 들어오라고 하며 내가 있는 온돌방의 사진을 찍어 sns로 전송했다. 비슷한 방이 여러 개 있었기에 위치를 알려야 했다. 약속시간이 되자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곳 가까이 사는 주민조차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의아해했다. 얼마 전까지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며. 인왕산 등반을 하기로 했던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뜨끈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온돌방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24시간 개방이면 노숙자가 알면 살아도 되겠는데."

누군가 얘기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반갑다. 몇몇 누리기엔 미안할 정도로 호사스럽다. 가까이에 서울역이 있다. 그곳엔 365일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자는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들은 이곳을 알까? 그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을까? 서울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 반짝이게 광을 내고 잘 정리된 이곳을 한 몸 뉘일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 몇 시간만 내주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24시간 중에 밤에 잘 때만이라도. 기후 변화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한파 때문에 죽는 이들이 많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이런 친절쯤은 베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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