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의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났다. 국어 시험이 어려웠다며 한강다리가 북적이겠다고 말한다.
작년, 귀국하고 시험을 처음 봤던 태하는 채점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친구들이 한강 다리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못 알아듣고 집에 오자마자 “왜 애들이 한강다리에서 만나자고 하는 거지?”라며 물어봤던 게 엊그제 같다. 그새 시험을 망치면 한강 다리를 운운하는 것에 익숙해졌다니.
성적으로 일비일희하는 한국의 학생으로 사는 건 나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1990년대 있었던 고입 선발고사가 사라졌는데 중학생들이 왜 성적에 목숨을 거는 건지 의아했다. 특목고를 가기 위해서는 A를 받아야 한다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반고에 진학한다. 게다가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로 성적표가 나오지도 않으니 말 그대로 자유롭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특목고과 의대 진학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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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힘들어했던 건 내 생각과 달리 친구관계보다 시험이었다. 객관식 문제와 문제 수가 너무 많다. 수학 외 과목에서는 객관식의 보기도 비슷비슷해서 답을 찾기가 힘들다 했다. 학생들이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 아니라 어떻게든 틀리게 하려는 것 같다고. 영국계 학교의 서술형 문제에서는 부분 점수가 있어서 어떻게든 점수를 주려고 했다. 가장 잘했던 과목이었던 수학이 한국에 오니 가장 못하는 과목으로 전락했다. 몇 배로 불어난 문제수에 짧은 시간이 주어지니 뒷 장은 손도 못 대고 제출했다.
반 친구들이 전학 온 태하에게 처음 했던 질문이 “어디 학원 다니니?”였다. 적응하기도 힘들거라 생각해 학원은 생각도 안 했다. 사실 스스로 부딪히며 자기주도학습을 하길 바랐다. 중학교 공부는 혼자서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아이마다 다르다는 것과 주변 환경을 좀 이용해도 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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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사교육을 이용하며 공부하는 환경 속에서 혼자 공부하는 건 철기시대에 돌멩이를 이용해서 사냥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다. 어려운 것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은 나때까지만 통했나 보다. 학군 지를 택했으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고 결과는 성적표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한다는 선생님의 말씀과 책을 많이 읽었기에 국어 점수는 걱정도 하지 않았는데 B가 나왔다. 알고 보니 시험 문제가 1학년 때부터 배운 내용이 누적되어 나왔다는 거다. 올해 3학년이 되며 시험 기간에 내신대비 국어학원을 다녀보자 했다. 학원에서 1학년때 배운 것부터 정리해서 자료를 만들어 주었다. 그 많은 양을 정리하고 공부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학원이 대신해주는 거다. A를 받았지만 학원에 돈을 주고 점수를 산 느낌이다. 물론 아이도 열심히 했다.
고등학교의 선택지 중에 국제고는 태하가 영어를 잘하니깐 특기를 살리면 좋겠다 싶었고 국제적 안목과 전문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을 살리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태하는 생각이 많다. 수학을 좋아하는데 문과만 있는 학교가 맞을까 싶고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 남학생이 많았으면 좋겠다는데 국제고는 여학생 비율이 70퍼센트 이상이다. 문과형 남고가 있으면 흔쾌히 지원하고 싶다지만 그런 학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문과형 남학생은 고교선택부터 폭이 좁다. 15살에 이과 문과를 나누는 교육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과쏠림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런 현상은 학생들이 이과성향이라기보다 사회와 학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라 생각한다. 거두절미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B라는 점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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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15살 너희들이 한강으로 가는 건 막아야겠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교육 현실 속에서 너희들을 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