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오랫동안 살았었지만 돈의문마을엔 처음 가봤다. 명동, 광화문, 경복궁 등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구나 알만한 그런 중심지만 다녔다. 화려한 건물들을 뒤로하고 한옥마을로 구성된 돈의문마을은 굉장히 생경하다. 게다가 돈화문과 헛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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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은 창덕궁의 정문으로 보물 제383호이다. 실제 존재한다. 돈의문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4대 문 중의 하나로 서쪽에 있는 대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니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사방을 둘러본들 돈의문을 찾을 순 없었던 거다. 막 서울에 상경한 시골뜨기처럼 두리번거렸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문이 보이지 않았으니 잘 못 내린 건가 의심했다. 주말의 이른 아침이라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는 인터넷이 어디서나 빵빵 터지는 대한민국에서 핸드폰에 물어보면 될 것을 왜 길가는 사람을 찾는지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날도 춥고 허둥지둥 나오느라 가방 속 엔 뭐가 들었는지 주인도 모르는지라 깊숙한 어딘가에 박혀있을 핸드폰 찾기가 귀찮았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뒤졌다. 장갑을 깜박한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빨갛게 얼어붙은 손으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쇠부치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 가방 속의 여기저기를 더듬어 겨우 핸드폰을 찾아들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이나 빨리 도착했다. 길 위에 서 있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호호 불며 따뜻한 차 한잔이 간잘했기에 주위를 둘러봤다.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마당옆엔 한옥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라는 푯말과 함께 "무료개방"이라는 반가운 문장도 보였다.
요리 조리 살펴봐도 이용 시간은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전자시스템으로 되어있는 도어록을 밀어보았다. 스르륵 열렸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처럼 안내문에 적혀있는 대로 했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디딤돌 위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발을 들여놓았다. 방 안의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누군가 빗질하고 닦아놓은 온돌방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온돌방이라고 했지만 기대하지 않았는데 바닥의따뜻한 열이 발바닥에 전달되며 잔뜩 움츠리고 있어서 긴장됐던 온 몸이 노곤해졌다. 누군가 계속 사용하는 공간이 아닌가 싶게 따뜻하다. 냉방이라도 찬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런 환대라니.
'여기서 쉬어도 되는 거 맞나?' 자꾸 의심이 들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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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일행들이 오면 들어오라고 하며 내가 있는 온돌방의 사진을 찍어 sns로 전송했다. 비슷한 방이 여러 개 있었기에 위치를 알려야 했다. 약속시간이 되자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는데 이곳 가까이 사는 주민조차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의아해했다. 얼마 전까지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며. 인왕산 등반을 하기로 했던 본래의 목적을 잊은 채 뜨끈한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 떼어내기가 힘들었다.온돌방에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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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개방이면 노숙자가 알면 살아도 되겠는데."
누군가 얘기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반갑다. 몇몇만 누리기엔 미안할 정도로 호사스럽다. 가까이에 서울역이 있다. 그곳엔 365일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자는 이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들은 이곳을 알까? 그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을까? 서울시민과 관광객을 위한 공간으로 반짝이게 광을 내고 잘 정리된 이곳을 한 몸 뉘일 곳이 필요한 이들에게 몇 시간만 내주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24시간 중에 밤에 잘 때만이라도. 기후 변화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한파 때문에 죽는 이들이 많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사람목숨이 달린 일인데 이런 친절쯤은 베풀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