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타치 Jan 13. 2024

주방을 접수한 남편

아내는 편하기만 할까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 이른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 걸쳐있는 수업을 해야 할 때는 비스킷 조각과  두유 한 두 개로 때운다. 집에 있더라도 혼자 먹기 위해 밥을 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가장 힘든 점은 끼니를 챙기는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영양소를 갖춘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돈 버는 것보다 힘들다.  유아기 때는 간을 하지 않으니 영양소만 갖추면 됐지만 성장하며 입맛에 맞게 다양한 요리를 해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산이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요리를 잘하셔서 대부분의 반찬을 해주셨기 때문에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요리책을 뒤적여 메인 요리 하나만 정하면 됐으니깐.

이미지 출처 pixabay

남편이 유럽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으며 문제가 불거졌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라 급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려 먹을 것을 자주 찾았다. 밥 먹고 뒤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무서운 시기였다.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매일 마켓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덕분에 마켓의 아저씨와 아줌마와 얼굴을 트며 세상 다정한 눈웃음 장착하고 손짓말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동양인이 많지 않은 나라여서 그렇잖아도 눈에 잘 띄는 외모에 매일 들락거렸으니 그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그들은 한국어를 나는 폴리쉬를 몰랐으니 눈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영어가 세계공용어라지만 그건 관광지나 비스니스상에서만 이고 동네 마켓에서는 눈빛과 손짓 발짓이 공용어다. 내가 외향형이라 다행이지 극내향형은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살면 우울증에 걸릴지도. 실제로 종종 있는 일이라 남편 회사에서는 부인 모임을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처럼 택배시스템이 잘 되어있었다면 아마도 집에만 틀어박혀있었겠다 싶다.  택배를 시키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에 누군가 받을 사람이 없으면 물건을 도로 가져갔다. 그래서 택배를 남편 회사로 배달했다. 동네 마켓에 없는 물건은 남편이 퇴근하는 길에 사 오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그러면서 장을 보는 남편이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재원오고부터 주방 일의 많은 부분을 남편이 담당하게 되었다. 메뉴 결정부터 재료를 사는 것까지 요리의 전반적인 부분을.

고마운 일이다. 요리에 관심 없는데 그 부분을 남편이 감당해(?) 주었으니 말이다.

외국에선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주재원의 규정이다) 전업주부인 나로서는 주방의 진두지휘를 남편이 하게 되며 내 자리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도울 일은 없는지 자꾸 기웃거리게 됐다. 내가 요리할 적엔 남편이 도와주는 것이 그저 고마운 마음이었다. 남편이 요리를 할  나는 왜 눈치를 보는 걸까? 속도가 달라서 그런지 남편은 요리할 때 주방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나에게 미안함을 갖게 한 요소인 것 같다. 내가 요리를 할 적엔 남편의 도움이 고마웠는데 남편은 혼자서도 잘한다. 그러나 남편이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두 다리를 뻗을 만큼 편하지만은 않다. 설거지를 맡기까진 그랬다. 

나는 식사를 하고 좀 쉬었다가 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음식물이 말라붙는다며 남편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하는 스타일이다. 요리를 좋아하진 않지만 점점 식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집이라 주방일 말고도 할 일이 꽤 많았다. 나의 쓸모는 다른 곳에서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며 집안일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방에서 어떻게든 나의 쓸모를 찾아야 했다. 설거지는 내가 맡을 거니깐 손대지 말아 달라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아이들에게도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교육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그랬을 때 성적이 안 나오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게 되며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남자아이들은 게임으로 여자 아이들은 인*로 도망치게 된다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청소나 주방일 등을 도우며 작은 역할을 부여하여 공부 외에 아이의 쓸모를 찾아주길 바랐다.

남편이 나의 쓸모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일처리가 빨라서 뭐든 후딱 해낸다. 비교적 느리지만 주방에서의 쓸모가 필요했다. 명의 희생으로만 가족의 행복이 유지되긴 힘들다. 집안일이 한 사람에게만 가중 됐을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경우를 많은 엄마들을 통해 봐 왔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간 남편도 힘들어질 때가 올 것이다. 각자의 쓸모를 통해 균형을 맞추어 나갈 때 가족의 행복이 유지될 것이다. 설거지를 하는 요즘 편안하다.

작가의 이전글 돈의문마을에 가보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