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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타치 Dec 14. 2024

잠자리독서

고등학생도 합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읽는다. 

이제는 내가 아니고 아이가.


잠자리독서를 오래 해왔다. 중학교 때도 읽어줬다. 지금은 아이가 읽고 나는 옆에 앉아 있다. 책의 종류도 달라졌다. 이야기 책이 아니라 교과서다. 기말고사기간이다. 시험 범위가 워낙에 많아서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태정이는 잠자리독서를 표방한다. 태정이가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을 때 나는 듣는다. 한국사와 통합사회(통사) 교과서를 주로 읽는다.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과목이라서 재밌다. 분명 학교 다닐 땐 지루했을 텐데. 한국사의 시험범위가 내가 직접 겪었던 일들이라서 신기하기도 하다. 그 당시 얘기를 하느라 한 페이지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한 단원 진도를 나가면 좋겠지만 조바심을 내고 공부하라는 티를 내면 방에서 쫓겨날지 모른다. 태정이는 진도 말고 내가 겪었던 스릴 넘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그렇지, 나도 수업시간에 교과서 내용보다 선생님이 덧붙여해 주는 이야기가 더 재미났던 기억이 있다. 곧 자야 하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점점 더 초롱초롱해지는 아이의 눈빛을 감지하며 언제 끝낼지 가늠한다. 무용담은 술술 나오고 밤은 점점 깊어간다.

pixabay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나는 국민학생이었다. 그때의 민주화 운동은 눈물콧물을 쏟은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병원을 가기 위해 엄마랑 시내에 갔다. 지하철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매캐한 연기가 퍼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추가 콧구멍과 눈에 뿌려진 것처럼 맵고따가웠다. 눈물, 콧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엄마가 재빨리 어깻죽지에 맨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오른팔로 나를 동그랗게 감고는 얼굴을 손수건으로 덮어주었다. 수건에 가리어진 채 엄마가 이끄는 방향으로 같이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니, 엄마가 나를 둘러 안고 뛰었다.

이야기를 듣던 태정이는 어이없어한다.

맞다, 말이 안 되던 시대였다.

고등 역사교과서


아들에게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며 잠자리독서를 한다. 그동안 해왔던 것에서 책만 바뀌었다. 이야기책에서 교과서로. 사춘기라는 엄청난 소용돌이를 지나 사이좋은 날이 도래했다. 그렇다고 매일 편하지는 않다. 물론 전쟁 같은 날도 많지만 중학교 시절보다는 확실히 줄었다. 시험기간이면 더 돈독해진다.


잠자리독서로 얻은 것은 관계이다. 사춘기가 극심했을 때는 아이가 원했지만 버릇없는 행동(?)에 화가 나서 책을 안 읽어준 적도 있다. 나도 감정적인 인간이라서 괜찮은 척 읽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밤에는 낮보다는 차분해져서 서로에게 너그러웠던 적이 더 많다. 사춘기 때는 독서보단 잠자리 대화를 많이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선 내가 해주는 이야기보다 아이에게 듣는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아이의 고등 생활이 어찌나 스펙터클 한 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pixabay

한글을 뗐다고 잠자리 독서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시기가 곧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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