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루 2~3시간 정도만 자는 기간이 한동안 지속되면 원두 주문 할 겨를이 없다. 그런 상태로 몇 개월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내가 뭐라고 원두 갈아 마시는 사치를 했었나” 싶어지는 때가 온다.
그런 시즌이 있다. 나뿐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이 다 나처럼 바빴으면 하는 시즌. 조금 한가로운 사람을 보면 스멀스멀 “이런 나사 빠진 인간들. 이 어려운 시기에”라고 생각하는. 문제는 그런 내 기분을 가족에게도 적용한다는 것이 문제다.
아빠는 야수의 시간을 살고 있단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 지 몰라서 불안하단다. 어쩌면 너희가 다 큰 다음에도 안 끝날까 봐, 지금 나의 불안정한 심리를 너희가 닮을까 봐. 그래서 더더욱 멀리 거리를 두는 것도 같다. 이 가정에서 나 혼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 야속하기도 하고, 제일 큰 문제는 “이런 나를 좀 쉬게 해 줘”라는 요청이 허락되지 않을 때 내가 짜증을 낸다는 거겠지.
애들이 야수처럼 자라나기를 바라냐는 와이프의 말에, 일면, 어느정도는. 이라고 생각해 버렸단다. 이런 야수의 심정을 갖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고 자위하면서.
야수의 심정이 사그라든 건 의외로 어느 산미 있는 커피 잘하는 카페에서였어. 너희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사그라들긴 하지만, 야수성을 내려놓지는 못하니까. 그런데 우습게도 향 좋은 커피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카페 공간에서 야수가 떠나가더라.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이었어. 몇 개월 내려놓은 커피 내리는 습관을 다시 꺼내야겠다. 커피를 내려 마시며 아빠는 깨어나고 아빠 안의 야수는 잠재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