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생각하지마세요
달리기를 할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생각이다. 오늘의 목표량을 여러 번 달성해 본적이 없다면 목표량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해내지 못할거라는 가장 안 좋은 생각인 목표에 대한 의심이 들거나 달리기 말고 오늘 해야할 일,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 미래에 대한 걱정, 혼자만의 공상 등등. 잡생각은 끊임없이 달리는 발을 붙잡는다.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의 조언을 따랐다면 만만한 짧은 거리를 아무 생각없이 휙 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목표량이 늘어나 몇 km를 달리다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잡생각을 지우려고 할 수록 계속 거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여러번 느꼈다.
차라리 생각하는 것을 허용하고 ‘내가 지금 이런 생각에 빠졌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의식하면 생각에 깊게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고민거리를 천천히 달리면서 생각해보려고 의도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아마 달리기와 고민 둘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마치 다른 방향으로 가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는 것과 같다. 오히려 달릴 때만이라도 평소했던 고민을 잠시 잊으려 의도하고 달리고 난 뒤 집으로 걸어갈 때 고민거리를 생각하는 편이 낫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과 목표량을 달리고 난 뒤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긴 상태에서 하는 생각은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색다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나는 야외에서 달릴 때 러닝 어플을 켜고 폰을 들고 달리는 데 (암밴드를 써봤는데 답답했다.) 지금 속도와 전체 페이스를 보면서 달리면 거기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잡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주변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달리는 곳에 안전이 확보되어야 하고 오랫동안 쳐다보지는 않아야한다. 나에겐 매우 효과적이었다. 잡생각을 방치해서 깊게 빠지는 것과 의식하고 집중하려는 것에 차이는 확연이 다르다. 5분간은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달리고 5분은 신기록을 세우겠다는 의도와 집중을 가지고 달려보라. 페이스 기록의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다. 이런 차이를 보면 생각을 아예 없애고 달리기에 집중하고 싶지만 그것은 바램일 뿐 개인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에서는 종종 완벽히 몰입해서 달리는 ‘러너스 하이’같은 상태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우리같이 일반인이 달리는 일상적인 달리기에서는 만나보기 어렵다. 러너에게 축복같은 그런 경험은 달리기에 훨씬 더 헌신적인 프로선수들. 즉 여유롭게 달성 가능한 목표보다 더 높은 꼭 이뤄내야 되는 목표와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쟁 상대(남이 아니라 자신일수도 있다.) 즉,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되고 그걸 이뤄낼 것 같은 가능성에 완벽히 집중할만한 실력도 겸비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조언하는 것은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달리기가 아니라 일반인이 꾸준히 달릴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완벽한 몰입 상태의 달리기) 별로 없을 것이다. 페이스와 컨디션이 좋다면 달리는 도중 짧게 느껴질 수도 있고 나도 그런 경험은 해봤다.
어쩌면 일반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날 같은 특수한 날에는 전력을 다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적절한 목표라는 꾸준히 달리기 위한 만만한 즉 여유로운 한계점을 찾는 것이 우선이고 그런 적절한 목표를 계속해서 증가시키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느슨한 달리기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생각들을 관리해야한다. 우선 달릴 때 드는 잡생각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를 갖는 것부터가 시작이고 잡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해 보는 것이 그 다음이다. 생각에서 경치나 음악이나 현재 페이스에 대한 집중으로 주의를 의도적으로 변환하면 그냥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코끼리를 생각하지마세요. 라고 말하면 코끼리부터 생각이 난다. 다시 얘기하지만 잡생각을 없애라고 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달리기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관리해야한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10km, 5000km를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