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사람이여, 꽃을 철학하라!
변하지 않는 자연은 없다고 누가 그랬다.
전남 장성에 있는 기숙형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있는 걸 괴로워했던 때가 있다. 마침 교정을 하던 나는 딱딱한 음식을 일부러 무리하게 씹어서 치아에 달라붙어 있는 교정기를 떨어지게 했다. 떨어진 상태로 놔두면 이가 틀어지기 때문에 바로 다시 붙여야 하는데, 그러면 집 주변에 있는 치과에 갈 수 있었으니까. 이때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지만 아빠는 나를 장성으로 데리러 오고, 또다시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일하는 도중에 자영업장을 뒤로하고 딸에게 달려오는 아빠한테 미안했으면서도, 학교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에 가끔 고맙단 말로 죄책감을 조금 씻어내릴 뿐이었다.
“아빠는 똑같은 도로를 계속 오고가니까 심심하겠다” “음? 아니야~ 자연은 항상 변해. 그래서 매일 새로운 길을 다니는 것 같아. 도로 옆의 나무도 풀도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이야.”
내가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도로를 달려봤다. 초보 운전이라 앞만 보고 달려서인지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운전하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자연을 보는 눈은 분명히 한 단계 성장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본가에 가느라 고속버스를 타고 있다. 도로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나무들을 하나씩 유심히 본다. 새 생명의 둥지를 친히 내어주는 나무. 울창한 숲을 이루기 위해 뒷자리에서 초록빛 얼굴만 내보이는 나무. 너희 각자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구나.
봄이 되니 진달래, 목련, 개나리, 철쭉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벚꽃까지! 어제 보이지 않던 꽃이 오늘은 보인다. 하루하루 보는 꽃이 늘어나는 것을 실감한다. 봉오리를 터뜨려 며칠 꽃으로 불리기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모두가 ‘그냥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는지! 꽃은 자기의 색을 피워내면서 존재를 알린다.
이때, 무명기가 오랜 배우와 연습생 기간을 보내는 아이돌 지망생을 생각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오랜 시간 앉아서 하고싶은 것을 꾹 참고 지내는 학생들을 생각한다. 하고싶은 일을 열심히 하며 진로를 찾는 학생들도 생각한다. 방금 말한 이들을 특히 응원한다. 주변에선 방황이라고들 하겠지만 결국 그것이 정황을 보내고 있는 것이기에.
한편 다른 꽃들이 봄에 필 때, 그저 나무라 불리는 우리 옆에서 “너는 너의 계절이 있는 거야. 언젠가 너의 계절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거야” 하고 말해주는 동행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우리는 청춘. ‘나’를 찾기 위한 과정 중에는 끊임없이 번뇌가 든다. 그 고민들을 뼛속까지 열심히 체험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벚꽃 시즌이 질 무렵, 지는 꽃을 기억한다. 저물어 가는 그 꽃은 누군가 사진을 찍지 않을 테니 “아 예쁘다~”하고 찍기도 한다. 당신이 지금 꽃을 피우기 전이든, 꽃으로 피어있든, 저물어 가든. 단 하나의 사실은 참 어여쁜 사람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