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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 Sep 15. 2021

아빠가 변했다

뜻 밖의 발견

여자들도 더 사회생활하고,
더 나서야 된다.


깜짝 놀라서 아빠를 쳐다봤다. 지금 내가 뭘 들었나 싶어서 쳐다봤다. 거실 TV 화면에는 여성 임금 차별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빠의 시선은 TV에 꽂혀 있었다. 저녁을 먹고 거실에 누워서 배를 두드리던 나는 TV를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방금 내가 뭘 들었나. 아빠가 말한 게 맞나. TV에서 나온 소리는 아닌가.


아빠가 이상하다.

아빠답지 않은 말을 한다.


예전 같지 않으면 하지 않을 말을 한다. 50년대생인 아빠는 원래부터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쪽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 온, 굉장히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아직도 엄마의 불만이지만, '맛있다'라는 말 대신 '먹을 만하다. 나쁘지 않다'가 최고의 찬사인 사람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상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라고 매번 가족 소개에 썼지만, 실은 아니었다. 아빠는 '집안일'과 '바깥일'의 구분이 명확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집안일'을 위해 권위적인 아빠와 결혼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그만뒀다. 그 시대 대다수의 여자들이 그랬듯이, 그것은 그 사회의 순리였다.


이 집 여자들은 남자들과 겸상하기 어려웠다. 명절에 할머니 댁 가면 우리의 식사 장소는 부엌이었다. 음식은 죄다 할머니와 맏며느리인 우리 엄마가 차렸는데, 그녀들은 방에서 밥을 먹지 못했다. 남자 친척들은 안방에서 TV를 보며 밥을 먹었고, 엄마는 어린 우리를 데리고 할머니와 작은 엄마들과 따로 부엌에서 쭈그려 앉아 밥을 먹었다.

 

할머니, 왜 우리 엄마만 일해요?


학교도 안 간 내 동생이 내뱉은 말에 어른들은 당황해했다. 그리고는 애기한테는 뭐라 할 수 없으니, 혀를 차며 엄마에게 말했다. "자식 교육 잘 시켰다." 동생은 그 때부터 할머니 눈 밖에 났던 것 같다.


나와 사촌 오빠

그래도 나 예외였다. 집안 장남의 장녀가 가진 특권이었다. 안방에서 어른들이 날 안고 밥 먹여주는 날도  있었다. 차례 지낼 때나 성묘 갈 때도 집안 어른들은 나를 데리고 가셨다. 절도하게 하셨다. 또한, 서울에서 꽤 공부를 한다는 평판 덕에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랑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혹여 동네에서 다른 어른들을 마주치면, 나를 데리고 가서는 "야가 ○대 다녀"라며 할머니는 우쭐해하셨다. 해가 바뀌어도 내가 드린 대학교 탁상 달력은 여전히 방 안 TV 위에 놓여있었다.


받는 사람 :  ○○훈


그래도 내가 여자였던 게 아쉬우셨던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종종 내 이름을 저렇게 써서 먹을 것을 보내셨다. 어릴 때 엄마에게 왜 자꾸 저렇게 이름 써서 보내냐고 심통 부린 적도 있었다. 엄마는 "네가 아들일 줄 알고 이름 저렇게 지어놓으셨는데, 아쉬워서 그러시지"라며 나를 달래곤 했었다. 어린이는 그때도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었다면,
가족 모두가 좀 더 행복했을까?


10대에는 눈치 보느라 말하지 않았다면, 20대가 되고부터는 생각을 말하시작했다. 그러는 과정 중에 권위적인 부모님과의 충돌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엄마 아빠에게 나는 더 이상 과거처럼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될 수 없었다. 정치 성향은 권위적인 아빠와 더욱더 극과 극을 달렸다. 심지어 나는 시위도 나가고 정당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빠는 호적에서 나를 파 버린다고 대노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아빠가 여성 임금 문제에 논평을 하다니. 꽤나 충격적이었다. 요즘 아빠의 모습은 꽤나 낯설다. 뒤늦게 자격증 공부 바람이 들은 엄마를 서포트하는가 하면, 집안일을 본인이 자처하신다. 요리를 엄마가 하고, 빨래와 청소는 아빠 담당이다. 가끔은 '내가 네 방 다 깔끔하게 청소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시는데,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딸이든 아들이든 잘 되면, 그것이 가족이 잘 되는 길이란 걸 이제 깨달으신 걸까.


요즘에 그런 게 어딨냐고 화내던데?


아빠가 아까 이상한 말을 했다고 했더니, 동생이 예삿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저번에 절에 가서 내가 '난 여자니까 절하면 안 되지?'라고 했더니 아빠가 요즘에 그런 게 어딨냐고 역정냄."  


사람은 안 변한다고 생각했는데, 변하긴 하나보다. 그러는 사이에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게 아쉽긴 하다. 진작에 알았다면, 매번 불어닥친 인생의 기로에서 모두가  나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좀 더 가족이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도 조금이나마 변한 게 어딘가 싶고. 변해버린 아빠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내심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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